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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휴고 발의 음성시 ‘카라바네’

 

 

 

1916년 스위스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라는 공간에서 한 남자의 기상천외한 공연이 펼쳐졌다. 휴고 발이라는 이름의 독일 출신의 젊은 예술가는 마분지로 희한한 공연의상을 만들어 걸친 후 홀로 무대에 섰다. 흡사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과 같았다. 마분지를 둥글게 말아 몸과 다리, 팔을 감쌌고, 마분지 망토와 모자도 걸쳤다. 그는 이 자리에서 ‘카라바네’라는 제목의 시를 읊는다. ‘올라카 올랄라 알로고 붕 블라고 붕….’ 문방서 블로그 아트살롱

그 누구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그저 소리로만 존재하는 시구였기 때문이다. 유럽의 각지에서 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젊은 예술가들은 중립국 스위스라는 작은 섬을 찾아와서 놀라고 아픈 가슴을 이처럼 황당한 퍼포먼스로 표현을 했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잃어버린 인물이었지만, 스위스의 젊은 예술가들은 언어를 상실해버린 이들이었다. 전쟁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린 환자와도 같았다.

이곳 ‘카바레 볼테르’는 중립국 스위스라는 도피처를 찾아 들어온 젊은 예술가들과 망명자들이 자주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다다(Dada)’라는 이름의 새로운 경향이 탄생하였다. ‘다다’는 언어를 습득하기 전의 유아들이 옹알이하는 소리를 의미한다. 또한 ‘다다’는 프랑스어로 ‘회전목마’를 의미하며, 아프리카의 한 종족은 ‘다다’를 소의 꼬리라고 일컫는다 한다.

이태리에서는 ‘다다’가 어머니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러시아어는 강한 긍정의 대답으로서 ‘다다’를 쓴다. 다다이스트들은 ‘다다’라는 단어가 띤 다의성에 끌렸고, 이 단어가 지닌 소리로서의 느낌을 좋아했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도피처 스위스에서 펼치고 있는 예술 행위에 ‘다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존의 관념과 생각, 신뢰들이 모조리 무너져버린 세상 속에서 이들은 말로서 그 어떤 것도 정의내릴 수가 없었다. 그 무엇도 정의내리지 못하는 언어는 그저 소리라는 공허한 형태로 한 예술가의 입에서 줄줄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매체와 위정자들이 떠드는 소리, 법과 도덕이라 믿었던 일련의 규칙들은 인간 세계를 위협하는 폭력으로 되돌아왔다. 언어로써 규정되어온 차가운 이성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은 짓밟혔다.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은 철석같이 믿어왔던 기존의 가치관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느꼈고, 어떠한 말로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채 공황상태로 빠져들었다.

카바레 볼테르에서는 일종의 실어증을 앓게 된 이들이 ‘음성시’를 발표하는 퍼포먼스를 행하곤 했다. 음성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고 단지 소리와 울림으로서 이루어진 시다. 비록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채 예술가의 입에서 흘러나와 공중을 떠다니고 있는 언어이지만, 그 소리가 주는 특유의 감성과 울림은 감미롭고 진심 어렸다. 그 소리가 주는 느낌을 따라 예술가들은 어린 아기처럼 옹알이했다.

다다는 예술가들이 행할 수 있는 비언어적인 저항이었다. 충격과 상처가 클수록 할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니, 비언어적인 저항, 혹은 침묵의 저항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저항이 아닐까. 한때 시대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침묵’이라는 방법을 택했던 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종종 그들의 소식을 듣곤 했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는 항변을 하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살벌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어이없는 상황을 위트로 받아넘기며 껄껄 웃는 소리마저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 허탈한 웃음과 열렬한 항변 속에서 자신의 심정을 어찌 말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카바르 볼테르’라는 장소에서 행해졌던 퍼포먼스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양철 나무꾼 같은 복장을 하고 등장한 후 공허한 표정을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던 이야말로 진정 누군가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을 테니까. ‘다다’는 현대미술의 화려한 개막을 알린 뒤 곧 사라져버린 일시적인 경향으로 기억되곤 하지만, 후배 예술가들은 이 경향을 자주 들춰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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