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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한국영화 100년, 김운석 映寫技 技士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성격과 재능을 가지고 세상과 마주한다. 문학촌에서 머무는 작가들과 어느 날 교외로 나섰다. 식당을 찾는 길이었다. 비는 내리고 야심한 시골길을 한 시간 가량을 돌다가 발견한 불빛을 따라 찾은 인가에는 부부가 때늦은 저녁식사를 고즈넉이 하고 있었다.

낯선 사내 세 사람을 친절하고 다정하게 맞아줬다. 식탁주변으로 둘러진 영화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 영사기 기사 김운석 선생을 그렇게 만났다. 영사기 40대와 렌즈, 수 만장의 포스터며, 세월을 넘긴 16미리, 36미리, 100미리 필림들이 질서정연하게 가득 쌓여있었다. 감탄이 절로 났다. 그의 영화인생을 들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역경과 좌절, 그리고 갈등과 대립으로 힘겨운 시련을 누구나 한번쯤 겪는다.

실제로 45년 영화인생으로 적지 않은 파고를 겪으면서 영화의 시대를 살았다. 정미소를 하시던 부친의 퍼주는 인심에 결국 가세가 흔들려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가설극장 영사기보조 시다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아들내외까지도 크고 작은 한국영화제에서 영사기를 틀어주는 가업을 이었다. 분신처럼 영사기를 지니고 살아온 추억은 인생역정의 드라마요 소설이었다.

필림 영사기와 디지털 영사기를 다루는 차이점은 영화를 찍으면 손으로 필름을 자르고 붙이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편집을 했지만 지금은 컴퓨터에서 영화편집을 한다.

애지중지 정리해 둔 영화소품들과 영화포스터를 보면서 영화인으로 살아온 뒤안길에서 얼마나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읽을 수 있었다. ‘남이 뭐라 하든 영화인생에 후회가 없다’, ‘살아온 운명처럼 영사기와 생을 마감하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기부를 할까 많은 생각을 한다’는 김선생 내외 얼굴에는 순박한 사람냄새로 가득했다.

오늘 가장 행복한 시간을 그리워하며 영화를 닮아가는 아내와 함께 시골사람들에게 추억을 되살려 영화필림으로 보여주는 소소한 기쁨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 아니면 아주 작은 공간을 바꾸는 일, 옳은 길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그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영사기 빛의 끌림과 울림으로 뿜어진, 고뇌가 담긴 촉수의 빛들로 살아온 깊고 깊은 밤이 오기까지,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그려진다. 고비마다 아내 엄명희 여사는 늘 힘이 됐다. 영화가 지겹게 느껴지고, 생계로, 힘들 때도 많았지만 영사기 기사로 살아온 남편의 얼굴은 사랑으로 되찾아왔다.

영화인생으로 후회는 많았지만 더 많은 후회를 줄이도록 마음을 비우고 시골로 낙향한 곳이 강원도 횡성의 외진마을이다. “가진 것이 부족해도 이웃과 나누며 마을사람들과 즐겁게 살 수 있는 현재의 시간이 행복이라며, 바람같이 지고지순함으로 삶의 역정을 잘 지탱해준 아내의 동행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올해가 한국영화 100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찾지만 한편의 영화가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스며든 고행의 연작들이다. 영화 속 아픔은 아픔대로, 고난의 괴로움들은 고난대로,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한 꼭 필요한 사람들의 자양분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삶이 만남의 연속이고, 그 작용이 인연으로 남는다. 뜻밖에 우리 앞의 생을 생각한다.

힘든 것, 불행한 것, 다행인 것, 삶에 대한 겸손한 순행들을 거울에 비쳐보자. 조건과 이익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에 김운석 선생과 인연은 우연이 아닌 필연인 듯하다. 주변의 시선이 아닌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서 찾아보는 일, 가장 편안하고 자율이 구속받지 않는 곳, 스크린에서 아주긴 여행은 아닐지라도 영화를 통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시간의 여로가 한국영화100년을 맞는 때, 숨은 기억의 창고가 여기서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역사의 큰 빛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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