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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수원화성 KS 세계시낭송축제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수원 화성행궁 유여택 안마당에서 ‘수원화성 제1회 KS 세계시낭송축제’가 열렸다. 국내 최고 시인들과 수원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멀리 유럽의 루마니아, 몰도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시인들과 함께 한 명실공히 세계적인 시축제였다.

사단법인 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수원시, 수원문화재단, 한국시인협회, IBK기업은행 등이 후원한 이번 축제에 참가한 외국 시인들은 ‘유여택’이라는 공간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유여택은 수원시 화성행궁에 있는 건물로 평상시에는 화성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대왕 행차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곳이었다.

정조는 약 500여 편의 시를 쓴 인문군주다. 약 2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정조의 시 정신에 화답하듯 각자 시를 낭송할 때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모두 알 수 없는 마음의 흔들림이 있었다고 했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몰도바 공화국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되는 니콜라이 다비자는 국경을 지날 때마다 여권검사를 하는 대신 시를 한편 읽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이미 정부당국에 한 바 있다고 말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한국어가 매우 음악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처럼 탁월한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소리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적 직관에 무언가 희망적인 기대가 일었다. 소리의 음악성이 지니는 통합과 화합과 조화의 힘 때문이었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어도 통합보다는 분열이 쉽게 일어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국경을 지날 때 시 한 편을 읽자는 것은 경계를 허물자는 뜻이다. 인간 마음 깊은 곳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시심이 있어서 아무리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어떤 순간 공감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는 분열보다는 통합의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어가 음악적이라면 그 통합의 힘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작금의 위기에 처한 국가의 운명을 불안하게 바라보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인은 가난하지만 시를 통해 의미 있는 유산을 남겨줄 수도 있다는 한 시인의 말에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 니콜라이 다비자는 아이들을 위해 이런 유언을 남긴다.



아이들아, 별은 / 제 실을 잣는 법. // 시로는 돈을 벌 수 없기에 / 나는 너희들에게 이 장미를 유산으로 남긴다, / 참정권과 평안을 주는. // 그리고 대기를 경작하는 이 가시들 / 이것들은 너희를 피 흘리게 하리라, 영원히. // 그리고 매년 봄이 오면, 장미향은 / 뿌리 뽑을 수 없으나, / 땅속에 살아 있는 뱀들을 모두 잠에서 깨운다. / 너희들은 이 향을 손수레나 덮개 마차로도 운반할 수 없지. /이 향기를 톱으로 잘라 나눌 수도 없지. /그러니 나는 너희들에게 유산의 향기를 남겨 주리, / 이 장미를. //그리고 만일 너희들이 여기에 정성과 애정을 쏟는다면 / 누구도 그것을 너희들의 가슴에서 빼앗아가지 못하리. / 사형집행인이 땅에서 장미 덤불들을 다 뜯어낸다 해도 / 가느다란 뿌리 하나는 남아 있으리. // 봄바람이 가지에 불어올 때면 / 장미향이 시를 쓰게 하고, / 장미 가지가지마다 꽃이 피어 / 등극하는 젊은 군주 같겠네. //그러니, 이 장미는 / 너희들의 유산이라네. - 유언장 전문



공자가 ‘시경’의 ‘시 삼백 편을 두고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고 했듯이 좋은 시에는 사악함이 없으니 시를 읽고 자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옳고 그름을, 진실과 거짓을,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안다. 그러니 시는 세계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고 이를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경을 넘으면서 시 한편 읽어주는 아름다운 마음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살만한 세상이 될까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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