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로 만나는 부처님”… 국내 유일 황금탱화 그리는 장인
“불화로 만나는 부처님”… 국내 유일 황금탱화 그리는 장인
  • 조주형 기자
  • 승인 2019.10.20 18:30
  • 댓글 0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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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제57호 이연욱 불화장이 불화를 제작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1987년 2월 계명주를 1호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도 지정 무형문화재는 68종목으로 늘었다. 개인 47종목, 단체 21종목으로 기능 보유자 56명, 전수교육조교 42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기능 보유자와 단체에는 각각 130만원과 80만원, 전수교육조교에는 50만원이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전수 교육·재료비·작업장 및 연습장 임대료 등에 활용키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게다가 보유자 대부분이 자비로 전수회관도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도는 지정 무형문화재의 원형 보존 및 전승을 위해 기능 전수 장학생을 선발,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전수조교 조차 찾기 어려운 녹록치않은 상황에, 우리내 관심에서도 멀어져가고 있는 현실은 이들 보유자들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에 경기도와 함께 도 지정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림에 관심 많았던 어린 시절
단청 장인 김한옥 선생 따라 입문
또다른 장인 故 조정우 선생 만나면서
본격적인 불화 그리기 시작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 장인인
원덕문 스님에 전통불화 기법 전수받아

전국 사찰 300여곳 불화 8천폭 그려
제14회 불교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불화 입문 43년 만인 2015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7호 지정

“자나깨나 불화와 물아일체적 경험
평생 부처님 그려 죽어도 여한 없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평생 불화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불화(佛畵) 장인 이연욱 (63)씨는 지난 47년간 불교화에 몸담아온, 국내에서 유일하게 황금탱화를 그릴 수 있는 베테랑 화공이다.

불화장(佛畵匠)은 불교화(佛敎畵)를 만드는 장인이다.

최근까지 불화는 단청장(丹靑匠) 보유자에 의해 전승됐다.

2006년부터 불화는 단청으로부터 분리됐다.

이연욱 불화장은 자신만의 황금탱화 기법으로 지난 제14회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0여년 전에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 33관음도를 그렸다.

그렇게 전국에 있는 300개 이상의 사찰에 예배화, 교화 등 각종 불화 8천폭을 그려왔다.

그러던 이씨는 지난 2015년 11월 20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됐다.

불화에 입문한지 꼭 43년만에 이뤄진 일이다.

지금은 불화 장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초 불화부터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벽에 색감을 입히는 단청에서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관심도 많았고 소질도 있었던 그는 염하는 아버지를 곁에 두고 있어 불교에도 친숙했다.

1972년 어느날, 단청 장인 김한옥 선생이 비각 단청을 하러 왔다.

그의 고향인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일대는 문익점 목화 시배지였기 때문이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때마침 나타난 김한옥 선생 옆에서 단청을 보게 됐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안그래도 깊은 시골인지라 먹고 사는 걱정이 많았던 당시,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단청을 돕겠다고 나섰다.

이 화공은 “당시 저는 단청을 보고 색이 좋아서 하고 싶다고 무턱대고 나섰는데, 연락하겠다고 해 놓고 연락이 없어서 제가 먼저 편지를 써서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단청으로 불화에 입문했다.

쌍용도

 

하지만 단청부터 시작한 그는 이내 곧 불만을 감추지 못했고, ‘내가 색을 칠하러 온 것인가’하는 말못할 갈등에 시달리며 결국 스승에게 그만두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김한옥 선생이 당시 자신에게 “처음에는 단청도 그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가겠다고 말하자 ‘불화를 배우기 전에 우선 단청부터 배우는 것’이라며 타일렀다”고 전했다.

스승의 만류에 따라 결국 그만두겠다는 뜻을 접고 연습을 하던 어느 날, 드디어 불화를 시작하게 됐다.

1974년, 김한옥 선생이 서울 조계사 단청을 맡게됐고, 벽화는 대구 무형문화재 제14호 단청장인 고 조정우 선생이 그리게 됐다.

스승은 불만을 갖고 있던 당시 제자를 데리고 조계사 단청 작업을 함께 하게 된 것.

그때부터 조정우 선생 아래서 벽화 골재를 시작으로 습화(習畵, 그림 연습)를 하게 됐다.

1977년 여름엔 강원도 월정사에서 적광전 후불탱화를 작업한 조정우 선생을 모시고 두 달 동안 탱화 채색을 배웠다.

이때부터 이 화공은 고 조정우 선생으로부터 불화 그리기 연습을 하게 됐다.

3년 후인 1977년, 이 화공은 조정우 선생과 함께 강원도 월정사에서 후불탱화 채색 등을 배우게 됐다.

당시 이 화공은 낮에는 단청을 하고, 밤에는 습화를 하는 등 하루 2~3시간만 자고서 온통 불화 그리기에 매진했다.

어떤 때에는 밤에 너무 잠을 안자고 습화만 한다고 해서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잠좀 자라는 뜻으로 그림을 못그리게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 화공은 “당시에는 완전히 무아지경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불화를 전수받고 익혀가면서 처음 그린 불화는 바로 시왕초.

시왕초는 사자의 죄의 무게를 재는 왕들을 그린 불화다.

불화는 한번 그렸다고 해서 그 기술을 익혔다고 보지 않는다. 불교 경전에 나온 내용을 계속 생각하면서 안보고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 화공은 당시 불화와 물아일체 하는 듯한 느낌을 느끼면서 수백장에 달하는 시왕초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시왕초가 완전히 손에 익게 되자 이 화공은 그 다음 단계인 보살화(보살초)를 그리게 됐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어느새 부처님을 그리게 됐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1987년, 이 화공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 장인인 원덕문 스님에게 입문, 5년 간 그에게서 전통 불화를 배우게 됐다.

전통불화 기법 중 순금 바탕에 불화를 그려넣는 기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독성탱화 /이연욱 불화장 제공

 

그는 당시에도 불화와 물아일체적인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화공은 “자면서도 불화를 그리고 연구하는 꿈을 꾸고, 눈을 떠서도 불화를 그리고 있었다. 하도 그러다 보니 잠자다가도 일어나서 꿈속에서 나타난 부처님을 그리게 됐고, 그림을 그리다가 잠들면 어느새 꿈속에서 그림을 완성하기도 하고, 다시 깨서 그림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원덕문 스님은 그에게 많은 불화를 가르치던 스승이었다.

그에게서 전통불화 단청 기법을 배웠는데 순금 바탕에 불화를 그렸던 덕문 스님은 특히 달마도와 산수도 등을 많이 그렸다.

덕문 스님에게서 5년 간 기법을 배운 후 스승은 입적했다.

이후 이 화공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황금탱화를 그릴 수 있는 장인이 됐다.

검은 바탕과 붉은 바탕에 금선으로 그리는 먹탱화와 홍탱화 등이 있다.

주요 부분을 볼록하게 만든 후 금을 붙이기도 한다.

이는 10년을 넘게 연구한 끝에 만든 ‘고분(高粉) 살붙임’ 방식으로 2005년에 특허를 받았다.

이 화공은 이 황금탱화로 제14회 불교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이후 경기도 무형문화재 불화장으로도 지정됐다.

어린 시절, 그림이 좋아 철없이 입문해 오늘날까지 온 것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다고 이 화공은 강조했다.

그림이 좋아 시작한 불화를 꿈속에서도 그리고 눈을 떠서도 그릴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부처님을 보게 됐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연욱 불화장은 “제게 남은 시간은 끝까지 그림을 통해 부처님을 만나는 데 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마음을 다해 부처님을 그릴 수 있어 후회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열심히 그릴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조주형기자 peter5233@

/사진=조병석기자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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