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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그녀, 나혜석 그리고 미술상

 

어렸을 때부터 화가를 꿈꾸는 어린 소녀에게 나혜석은 절대로 본받으면 안되는 여자였다. 그러나 미술교과서에서는 최초의 서양여류화가로 불리우고 미술 시험 문제로 나오곤 했다.

나혜석(1896∼1948)이란 이름이 다시 인식 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후 매향여자중학교 미술교사로 임명되면서 부터다. 나혜석은 수원에서 태어나 1910년 수원 삼일여학교를 졸업하고 진명여학교로 편입한다. 매향여자중학교 전신이 삼일여학교이다.

수원에 와서 경기미술대전에서 2년 연속 우수상을 받고 1회 개인전을 마쳤을 때 제일 먼저 들은 말이 나혜석처럼 되지 말고 끝까지 살아 남으라는 말이었다.

도대체 나혜석이 무엇을 했기에 어린시절부터 금기된 이름이었을까.

나혜석은 오빠 나경석의 권유로 도쿄에 있는 일본 최초 여자미술학교 ‘여자미술전문학교’ 서양화부에 입학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화가 박래현, 천경자가 후배이다. 졸업후 1921년에 열린 경성일보사 내청각 개인전은 한국 여성 최초의 미술 개인전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개인전이 끝나고 남편 김우영(1886-1958)이 만주국 안동의 부영사가 되어 안동에서 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발표 했다. 1927년에 남편 김우영이 유럽과 미국을 시찰하러 가게 되자 한국 여성 최초로 구미 여행에 오른다. 1년 8개월이 걸린 구미 여행길에서 많은 견문을 넓혀 자신의 미술 세계에 혁신을 가져올 정도로 많은 발전을 한다.

나혜석은 일제의 문화정치 일환으로 조선미술전람회가 창설되자 1회부터 참여하여 입선을 하며 1933년까지 꾸준히 출품하며 '여자미술학사'라는 미술학원을 차렸으나 불륜과 이혼 등 사회적 문제로 문을 닫는다.

김우영과의 이혼 후 나혜석의 삶은 급속도로 하락 하고 화가로서의 활동도 위축된다.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오빠의 경제적 지원도 끊긴다. 급진적인 사상의 글과 개인사적 소송 등이 이어지며 사회로부터 비난과 조소를 듣고 아이들까지 보지 못하는 고통으로 나혜석의 심신은 병들어 갔다.

1935년에는 수덕사에서 불공을 드리며 자신을 찾아온 학생들에게 유화를 가르쳤고 대표적 제자로 이응로가 있다.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받게 되어 방랑생활을 하다 1944년에는 인왕산 청운양로원에 들어간다. 이후에도 중풍과 영양실조로 여러 곳을 떠돌던 나혜석은 1948년 12월 원효로에 있는 시립 자제원 병동에서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난다.

나혜석은 한 평생 붓을 놓치 않았다. 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그림을 그렸고, 남편을 따라 구미 여행 때에도 그림을 그렸고, 세상에서 버려졌을 때에도 그림을 그렸다. 천생 화가였다. 세상과 맞서며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한 노력이 더욱 세상에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때마다 그를 지켜준 것은 그림이었다.

오래 전부터 수원미술계는 나혜석을 바로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나혜석미술대전을 만들었다. 나혜석 자료를 찾아 유족을 찾았으나 문앞에서 돌아서야만 했다. 더 이상 어머니가 세상의 가십거리가 되기를 원치 않았던 나혜석 막내 아들이 보관한 나혜석 자화상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SIMA)에서 소장하고 있다. 수원에 있던 작업실이 불타 모든 작품이 소실되어 남아 있는 작품이 몇점 없다. 불꽃같은 나혜석을 기리고자 매향여자미술교사 시절에 교내 나혜석미술대회를 만들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일대에서 전교생이 그림을 그렸다.

이제 그녀, 나혜석에게도 자유를 주었으면 한다.

미술상도 제정하여 수많은 후학들이 그녀의 날개를 달고, 멀리 멀리 세상으로 안전하게 날아가 한국의 미술계를 빛내는 날이 오면 좋겠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수원에서 그림으로 꿈과 이상을 펼친 멋진 세계적인 화가가 나온다면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 나혜석에게 진 마음빚도 많이 갚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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