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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의 향기]청구영언(靑丘永言) - 우리들의 영원한 노래

 

 

 

조선 영조 때 사람 김천택(金天澤)은 평민 출신의 가인(歌人)으로 악론(樂論)에 통달하고 가객을 알아보는 눈이 밝았을 뿐 아니라 음악적 열정이 대단했다고 전해지나, 예인(藝人)이 천대받던 시대적 벽에 부닥쳐 그의 청아한 뜻은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런 처지에서도 당시 문인들의 개인 문집에 실렸거나 구비전승되어 오던 시조들을 모아 ‘청구영언(靑丘永言)’이라는 시조집을 펴냈다. 그는 발문에서 “우리 노래가 입으로만 읊어지다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후세에 전하고자 기록한다”고 엮은 취지를 소략하게 밝히고 있다. ‘청구영언(靑丘永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조집으로 김수장이 펴낸 ‘해동가요(海東歌謠)’, 박효관 등이 펴낸 ‘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3대 시조집으로 일컬어진다. 청구영언은 그동안 원본이 미공개된 상태로 1948년 ‘조선진서간행회(朝鮮眞書刊行會)’에서 활자본으로 500부 한정 발행된 2차본만 세상에 통용돼왔다. 그러던 중 3년여 전에 ‘국립한글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통문관으로부터 원본을 사들였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고문서 자료들은 개인의 손에 들어가면 이해관계에 따라 자칫 해외로 유출될 수도 있거니와 관리상의 문제로 유실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기관에서 관리되고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 청구영언 원본의 원래 소장자였던 통문관(通文館) 고서점 옛 주인 산기(山氣) 이겸로(李謙魯) 옹은 그가 쓴 ‘통문관 책방비화’에서 ‘청구영언’ 입수 일화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편자인 김천택의 아호 남파거사(南坡居士)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는 자필 원고본으로 학계에서 인정받는 유일본이므로 천하고본(天下孤本)에 속한다”고 하면서 원 소장자인 문인 오장환(吳章煥)이 6.25 당시 월북하게 되면서 오씨의 부인으로부터 매입했다고 한다. 그토록 아끼던 ‘청구영언’ 책과 아내를 남에 두고 월북한 오씨의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남편을 기다리다 남편의 분신과도 같은 소장책을 내다 팔게 된 아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책을 내다 팔게 되는 연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우선 사회의 정황상 남편이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남편 부재에서 오는 가계의 궁핍함 등이 겹치면서 불가피한 것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주인 양반이 점심을 굶다시피 애를 써서 그 책을 입수하시고 무척 아끼셨는데 다른 책은 다 팔아도 이 책만은 꼭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는 오씨 아내의 말이 비화로 전해지는 것을 보면 당시의 안타까운 풍경이 선연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 수록된 김천택의 시(詩) 세계는 어떠할까?

흰 구름 푸른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추풍(秋風)에 물든 단풍 봄꽃도곤 더 좋왜라

천공(天空)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며 냈도다

흰 구름과 계곡의 푸른 냇물, 고을마다 붉게 물든 단풍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그려내어 마치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듯하다. ‘봄에 핀 꽃풍경보다도 더 아름다운 가을 단풍은 나를 위하여 하느님이 꾸며 주신 산천의 풍경’이라고 표현한 작자는 후대에 자신이 낸 책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기쁨이 충만 되고 천진스럽기까지 하다. 이 가을, 시(詩) 한편 읽으면서 충만된 기쁨을 누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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