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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아프리카 가면에 열중하는 다다이스트들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피카소가 아프리카 가면을 쓴 홍등가의 여인이 담긴 대작을 발표했을 때, 관객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홍등가의 연인들의 조각난 신체, 거침없는 포즈도 충격적이었지만 아프리카 가면을 쓴 여인이 등장함으로써 작품은 광기 어린 현란한 제의식을 연상케 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가면이 지니고 있는 마법의 힘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딱딱하고 차가운 냉혈한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광기와 열정을 이면에 감추고 있었다.

그로부터 십 년 후 취리히의 ‘볼테르 카바레’라는 전위적인 예술가들이 교류하던 한 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아프리카 가면과 의상을 착용하고 이국적이고 현란한 춤을 추었다. 그 자리에는 무용수뿐만 아니라 미술가와 시인, 지성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 괴상하고도 이국적인 퍼포먼스가 지닌 의의에 동참하고 있었다. 한스 아르프는 그 무렵 ‘조피 토이퍼’라는 무용수를 만나 진지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고, 그의 조각 작품에는 유려한 춤 동작이 선사하는 신비로움과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 외 그 자리에 착석하고 있던 예술가들도 비록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신비로운 나라 아프리카에 대하여 막연한 애찬을 보내고 있었다. 다다이스트 차라와 휠젠베크는 도서관에서 아프리카 흑인의 시를 수집하였고, 마르셀 장코는 기묘한 인물 이미지를 담고 있는 작품 <흑인의 노래>를 발표했다. 카바레 볼테르에는 가면을 쓰고 있거나 피부색이 검은 인물 작품들이 즐비하게 걸리곤 했다.

사실 아프리카 가면은 그전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지니고 있었던 관심사였다. 피카소에게 아프리카 가면이 가진 잠재력을 제시했던 것은 마티스로서 그 역시 아프리카 가면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작품에 반영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카소가 재빨리 <아비뇽의 처녀들>의 발표하는 바람에 그는 아프리카 가면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등장시키지는 못했다. 블라맹크 역시 아프리카 가면에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회화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아프리카 가면으로부터 큰 단서를 얻었다.

이국적인 세계를 향한 예술가들의 관심은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들의 강령에 비추어볼 때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일찍이 일본의 판화가 전 유럽의 회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먼 나라의 문화와 이미지들은 또다시 새로운 회화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은 믿었다. 마티스는 중년의 나이에 프랑스 니스로 가서 지중해 건너 동방의 색채와 문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고갱 역시 남태평양 타히티 섬을 찾아가 그곳 사람들의 모습과 풍습을 열심히 남겼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이국적 풍경을 찾아 여행을 떠났을 때 그들은 세상만사에 지친 상태였고, 여행은 일종의 쉼과 치유의 목적을 띠고 있었다. 루소는 고국 프랑스 밖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지만 원시적이고 몽환적인 꿈속 세계를 그리기 위하여 이국의 풍경과 야생을 열심히 습작했다.

하지만 카바레 볼테르에 모인 전위 예술가들이 아프리카 가면에 지니고 있던 관심은 좀 더 다른 차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들은 아프리카 가면이 지닌 강렬하고 광적인 힘에 주목하고 있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가치관이 구축한 세계의 막장을 보았던 이들은 더 이상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성의 덫에 걸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비이성적이고 신비로운 힘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열정적이고 강렬한 아프리카 춤사위에 자신들의 절박한 심정을 실었고, 이러한 행위로 말미암아 세계인들과 소통하기를 원했다. 전쟁이 속속들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와중에 예술은 그리고 예술가들은 현재 아무런 힘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절망감을 이 현란한 제의식의 힘을 빌려서 돌파하고자 했다.

최근 나름의 절박한 심정과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종종 아프리카 가면의 형상이 떠오르곤 한다. 이들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역시 기적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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