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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동정이 가지 않는 알츠하이머병

 

 

 

 

 

“어디로 갔지 또?” “뭘 찾아요?” “저거…저거…내 말이 생각이 안 나네. 돈 넣는 거요. 요만한 거 있잖아요” “지갑이요?” “맞아 지갑이요. 아이고 또 지갑이 어디갔어?” “이거 이거 뭐에요?” “내가 이래 요새 정신이 없어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윤정희 씨가 그의 연기생활 50여 년의 마지막 작품에서 알츠하이머를 연기한 ‘시(감독 이창동)’라는 영화의 대사이다. 2010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할머니 역을 맡아 연기력을 선보이며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LA비평가협회상과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를 받은 작품이다. 최근 그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파리에서 10년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으며, 딸과 막내 동생의 얼굴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지구촌 노인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 된 것 같다. 뇌 분야의 전문가는 초기에는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 감퇴와 언어능력 저하, 시공간파악능력 저하 등 종국적으로는 정신행동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라보는 ‘나를 잃는 질환’으로도 불리운다는 ‘알츠하이머’병이 두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생소했던 이 병명을 알린 대표적 인물은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인 1994년 11월. “이제 나는 내 인생 황혼기로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이 병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는 담화문을 통해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낸시 여사와 ‘로널드 앤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설립하여 알츠하이머 치료 연구를 후원하였으나, 그의 말년에는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도 잊었다는 얘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독단적인 정부 운영으로 ‘철의 여인’으로 불리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도 이 병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가족들 몰래 외출을 나갔다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한 뒤로 2013년 뇌졸중으로 사망하기 까지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추며 철저한 은둔생활을 했다.

반면, 알츠하이머병과 감기를 이유로 형사재판 연기와 불출석을 반복한 전두환 前대통령이 지난 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추징금 관련 질문에 대해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과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담긴 인터뷰 내용이 공개됨으로써 알츠하이머 발병에 대한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됐다.

지난 2017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故(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5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의 아내 이순자 씨는 입장문을 통해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이 현재 인지능력으론 회고록 출판과 관련한 소송에 대해 잘 알지 못 할 뿐더러,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피해갈 수 없었던 질병 알츠하이머, 가장 화려하고 인기가 많았던 시기에 대중의 곁을 훌쩍 떠나 “90살이 돼도 어떤 여자의 인생을 얘기하고 싶은 영화를 꿈꾸고 있어요“라며 지극히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배우 윤정희씨. 마거릿 대처가 철저한 은둔이었다면 로널드 레이건의 대응은 드러냄이었다. 총으로 일어섰던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그는 펜으로도 뭇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알츠하이머”라는 말로 법정을 거부하였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으로 노년을 보낸다는 그의 모습이 초라하면서도 재판에 불출석으로 당당하지 못한 그의 행동에 동정이 가지 않은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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