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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정문촌(旌門村)

정문촌(旌門村)

                      /백석



주홍철이 날은 정문이 하나 마을 어구에 있었다.



‘효자노적지지정문’ 몬지가 겹겹이 앉은 목각의 액에

나는 열 살이 넘도록 갈지자 둘을 웃었다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어드는 아츰구신은 없고 부헝이가 담벽을 띠 고 죽었다



기왓골에 배암이 푸르스름히 빛난 달밤이 있었다



아이들은 쪽재피같이 먼길을 돌았다



정문집 가난이는 열다섯에



늙은 말꾼한테 시집을 갔겄다.

 

 

정신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는 정문촌 시다. 백석이 늘 가슴앓이 선상에서 탐색한 정신과 문화의 사유들은 시어마다 빛이 난다. 유년시절과 성장후의 관계적인 시절을 넘어서 보는 정문집의 시안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여기서 등장하는 주홍칠은 세월의 풍화작용들을 읽게 해준다. 효자를 기리는 목각의 액을 보면서, 생소한 모양을 보고 웃음 짓는 천진 스러움들이 정문집의 쇠락을 들춰내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잘나갈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고 보는 대로 판단하고 예우를 한다. 세월의 겹을 지나는 자연도 생명력으로 되살아나는데 정문촌 만큼은 퇴락함을 시간과 공간의 아쉬움과 갈망으로 자아낸다. 늙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장을 펼쳐보는 듯하다. ‘정문’이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세워 기르기 위해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이다. 탁월한 이미지 시를 읽는 즐거움이 백석의 마음의 시간을 또 이렇게 촘촘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시의 맛이다.

/박병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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