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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서춘자 시인의 문학과 얼굴

 

 

 

시인은 수원문학의 역사였다. 홀연히 떠난 전주의 하늘이 그려진다. 낙향한 시간의 거울은 아니지만 평소 단아한 시인의 세상눈은 각별하고 따뜻했다. 이를테면 스스로 문학의 정년퇴직을 결정한 것이다. 수원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리면서도 외길을 걷지 않았던 시인은 시조로 발을 옮겨 가장 뼈아픈 뒤안길의 추억을 겪는다. 사치를 가장 경계했던 탓이 그 이유다. 교직의 길에서 시업(詩業)에만 눈을 가진 시인은 내 누님 같은 착하고 정의로운 가슴을 지닌 여인과도 같았다. 글밭에서 촘촘하게 다듬어 시간을 낭비하지 않던 시인은 오늘밤에도 시의 뜨개질을 연마할 것이다. 시인의 안경 틀에서 은밀하게 마음을 비출 아름다운 세상의 미덕은 그래서 더 절절하고 추억이 되었다. 제주도의 기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지만 밤새워 고민한 계획들을 겸손치 못한 짧은 감성으로 옥죄이는 지나간 사념들이다. 심호 이동주문학제 길에서 영화처럼 일어난 별곡들은 추억을 넘어 언덕을 높게만 쌓이듯 아픔들이 재생된다. 시인의 「봄 몸살」이라는 시를 읽는다. 까무룩/깨어나 둘러보면 이승/허한 숨소리에 적막이 놀라는 곳/엄니 치마 한 자락이면 나을 듯한 병/발자욱 소리 들려 방문 열면/벚 꽃잎 하나 흩고 있다//그대 손가락 하나 닿으면 쾌차할 병/부르는 소리 들려 방문 열면/바람 한 자락 지나가고 있다//백목련빛 햇살 늑골 가득 채워/무릎 안고 앉아 혼자 치료하는/봄 몸살...때때로 잦은 행사 때문에 시인의 주머니 사정이 늘 비어있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보다 문사들의 가난을 읽었던 사람, 슬퍼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늘 가족처럼 살펴 챙겨주었던 시인은 왜 사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반추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 시인이 없는 하늘에 가슴 한구석 텅 빈 시절의 문학도들은 어디에 모두 가 있을까 회자해 보면 수혜를 받았던 사람들이 참 많았다. 빈손인 문우가 가난할 때는 경비를 챙겨주었던 시인이었다. 의로움은 간데없고 자신에게 손해가 될 일들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데 서시인은 그런 사람들을 더 챙겼다. 늘 시인 곁에 사람냄새로 흥을 모았고, 작은 몸짓은 너나 할 것 없이 정이 많은 시인과의 세월이었다. 의소통의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탁월했던 시인은 필자의 거울이었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늘 옳고 그름을 분별해 바꾸려고 애를 썼던 문학의 누나였던 것이다. 시인과 지나온 시절을 생각하면 할수록 매순간 순간 보내는 시간의 의미가 새삼 숙연해지고 진홍빛 노을처럼 은은한 밤하늘의 큰 빛들로 찾아든다. 문학이라는 개혁과 변화라는 이중주로 시대를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어려울 때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고민에 존재해 온 시인의 정신적인 산물들을 갇혀있는 구조 안에서는 이탈을 꿈꾸지 못한 일상적인 여로였지만 시인과 함께했다는 하나만으로 긍지와 보람이었다. 사회라는 지식과 감성을 형성하는 일, 그리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조건과 이익에 반하는 본능적인 모습들에 놓여있었지만 단 한번도 시인 자신을 위해 봉사한 적이 없었던 시인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삶을 밀착되게 걸었던 시간 후로 보면, 건강한 사람이 어렵고 아픈 사람들을 안아주어야 될 의무감을 시인을 통해 배우고 알았던 것이다. 치열하고 성실하게 글밭을 가꾸던 故신금자 수필가도 이 세상에 없다.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리움들을 남기고 떠난 일들은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시종일관 밥을 챙겨주고 눈물을 같이 닦아주었던 그리움들이 밀려든다. 반세기라는 문학의 시계를 인공지능시대와 고령화시대에 대비하는 삶의 터전처럼, 사람냄새 나는 문학인의 길을 찾고 작은 연대를 이루고 가야하는 시점이 분명 왔는데 적막하기만 하다. 한해의 언덕들이 지나간다. 가슴이 저리도록 오늘은 비단길 시인이 더 많이 그리운 계절이다. 얼마 남지 않은 한해의 결산을 뒤로하고라도 뼛속 깊게 파고드는 성찰과 고마운 시간을 새로운 기억의 재생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비단길 시인과 같은 한 사람이 잃어버린 삶과 문학의 흔적을 찾아서 지워지지 않는 글밭의 풍성한 마음들이 헛되지 않도록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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