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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 칼럼]이성의 역사적 목소리

 

최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보면 우리가 탄 배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불안과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자성은 회의와 질문을 전제한다. 의심하고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자성은 긍정적인 자세이며 문제의 해법에 접근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성적 존재로서 이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자처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왜 이다지도 불안감을 느끼는가?

이 혼란의 시대에 이성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흔히 이성을 이야기할 때 데카르트(Ren? Descartes)를 떠올린다. 서양의 근대는 데카르트로부터 출범했는데 근대와 더불어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그의 코기토 이론은 이성과 이성적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성의 원론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흥미롭게도 방법적 ‘회의’에서 출발한다.



“…그 의심스러운 점, 우리를 오류에 빠뜨리기 쉬운 점을 반성하면서 전부터 나의 정신에 숨어들어 있었던 모든 오류를 뿌리째 뽑아버렸던 것이다. 나의 계획은 전혀 그 반대의 것으로, 스스로 확신을 얻는 일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철학의 출발점인 ‘의심’은 회의론자적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다. 확실한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진리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할지 몰라도 이런 태도는 판단이 어려운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서 보듯이 데카르트는 인간의 존재 근거를 생각하는 이성에 있다고 보았다. 생각한다는 이성적 행위는 과연 이것이 맞는지 의심해보는 것이다. 인간은 의심하고 반성하는 한 존재하고 그런 한 인간이다. 그럴 때 이전의 잘못이나 오류를 뿌리 뽑고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불확실성 앞에서조차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지 않고 모른 척 덮어버리고 고집불통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는 더 큰 잘못을 가져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끊임없는 의심과 반성을 요구하는 데카르트의 이론에는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기독교적 경건주의가 깔려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실수를 하고 관점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스스로 물어보면서 동시에 타자의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을 때 보다 넓고 다양한 제 3의 관점으로 종합되면서 온전한 방향을 찾아 나가게 된다. 결국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쉽게 행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말이다. 데카르트 철학을 ‘겸양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이다.

자성이나 반성은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간’이라고 할 때 우리는 형식인 인간의 형상뿐 아니라 ‘인간됨’이라는 내용, 즉 관념을 떠올린다. 그래서 따뜻한 인간애와 도덕적 윤리적 덕성을 갖추었을 때, 즉 인간이 인간다울 때 비로소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자유민주공화국’이다. ‘자유’의 의미에서 보자면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신뢰하는 민주주의라는 뜻이다. 보다 정교하고 정치한 해석이 필요하겠지만, 집단의 힘이 과도할 때 개인의 선택권은 제한되고 권력이 거대집단인 국가에 집중되는 사회주의가 될 위험이 있다. 어쩌면 오늘날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과연 우리나라가 헌법이 명시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부합하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적으로 신뢰하는가에 대한 의심과 자성에서 나오는 본능적 반응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더 큰 오류에 빠지기 전에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성이 가르쳐주는 역사의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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