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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誠愛칼럼]문학과의 만남전 의미 - 그림은 장식품이 아니다

 

 

 

 

 

1937년 4월 26일, 24대의 비행기가 게르니카를 향해 5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무차별적인 폭격에 도시는 쑥대밭이 되고 1천600여 명이 사망했다. 독일 나치정권이 스페인 정부와 내전 중이던 프랑코 반란군 편에서 자행한 민간인 무차별 공격이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로 이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군사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었는데 단지 나치 독일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자신들의 비행기와 폭탄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폭격을 가했다는 사실에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시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장터에 나갔다가 참혹하게 당했다. 이러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피카소는 분노에 휩싸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저 유명한 ‘게르니카’다. 폭 7.8m, 높이 3.5m 거대한 그림은 한 달 반 만에 완성됐다.

불에 타고, 쓰러지고 절규하는 사람들, 울부짖는 말과 황소, 멍하게 하늘을 응시하는 여자, …… 분할되고 왜곡된 이미지, 흑백 톤의 차분히 가라앉은 컬러가 오히려 냉정하게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잘 안 알려진 사실은 피카소가 한국의 참혹한 상황에 대해서도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1950년 한국 전쟁 중에 일어난 황해도 신천군 일대의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을 1951년에 그렸다.

공포에 질린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작지 않은 그림이다. (110x210㎝, 파리 피카소 미술관 소장) 임산부와 엄마 얼굴을 부비며 안겨있는 아이를 겁에 질려 껴안고 있는 어머니와 뒤로 숨는 아이를 감추며 쏠테면 쏘아라 응시하는 어머니, 태연하게 선 어머니와 딸 놀라 뛰어가는 아이와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하게 놀고 있는 아이, 이에 비해 군인들은 촘촘하게 가득 총칼을 들고 서서 총과 칼을 겨누고 있다.

피카소는 천재 예술가, 입체주의의 창시자, 사업가로서의 예술가 등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위대함은 전쟁과 폭력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증언한 예술가였다라는 점이다. “회화는 아파트나 치장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회화는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피카소의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작품 앞에서 숙연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해져오는 오는 일화 하나는 그가 얼마나 강한 민중지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일깨워 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게슈타포 장교가 피카소에게 물었다.

“‘게르니카’를 당신이 그린 것이냐.”

피카소는 대답했다.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그린 것이오.”

지난 주 막을 내린 서울시 문학과의 만남전 ‘한국의 소설 그림으로 만나다’는 그야말로 한국의 대표소설을 회화적으로 보여주는 사상 대규모 전시였다. 개화기,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기, 70·80년대 산업화 시기의 대전환기마다 역할을 다해준 소설을 화가들의 상상력으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 대표소설을 대상으로 삼행시 70여 편을 창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관심을 표해줬다. 전시회는 끝나 아쉽기 그지없지만 전 작품이 책으로 발간돼 다행이다. 이 전시회가 그림이 단순한 애호나 장식품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증언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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