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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홍콩의 일기예보

 

일이 있어 홍콩에 갔다. 시위가 한창이던 시기, 나를 마중 나온 것은 홍콩의 탁한 공기였다. 마카오에서 이틀을 묵은 후 HZM 버스를 타고 강주아오대교를 건너서 내린 곳. 한 발 내딛는 걸음에도 먼지가 묻어날 것 같은 희뿌연 대기가 나를 반겼다.

홍콩에서의 첫 날, 시계탑 아래에서 바라본 밤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바토 무슈를 타던 파리의 세느강이 생각났다. 세느강의 풍경이 오래된 시간에서 나오는 고전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면 빅토리아 피크에서 본 야경은 현란하게 내뿜는 거대 자본이었다. 밤바다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 그것은 역사도, 자부심도 아닌 오직 자본의 논리였다.

파나소닉(panasonic), 엘지(LG). 홍보 경연이라도 하듯 번들거리는 유명한 기업들의 이름표. 마치 거대 기업들은 휴일의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 홍콩이 그런 국제적인 도시라고 말하는 듯했다. 목을 칼칼하게 만드는 공기도 잊어버리고 화려한 레이저 쇼에 빠져들었다. 카니발의 마지막 피날레를 보는 기분이었다.

다음날은 웡타이신(黃大仙) 사원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만원이었다. 몇 번의 에스컬레이터를 거쳐 전철을 갈아타고 웡타이신 역에서 내렸다. 사원은 철문을 단단히 닫아걸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공기가 흐르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검은 마스크, 검은 모자를 착용한 그들은 맨손인 사람도, 쇠파이프를 든 사람도 있었다. 조여드는 불안감에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 창으로 밖의 상황을 보았다.

도로는 어느새 움직임이 멈춰있었다. 뜯겨진 보도블록이 도로에 쌓이고 꼼짝 못하는 버스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다. 역 앞은 급박하게 뛰는 소리와 거친 광둥어가 뒤엉켰다. 하얀 경찰차와 형광조끼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언제라도 쏠 수 있도록 긴 총을 들고 있는 경찰이 보였다. 바닥에는 시위대로 보이는 사람이 누워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얼마 후 구급차가 왔고 도로는 다시 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호텔로 가는 버스노선과 지하철은 폐쇄됐다. 택시와 배를 갈아타며 가까운 거리를 멀리 돌아 도착했다. 시위대보다 경찰이 더 무서웠다. 사람들은 안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들의 얼굴은 탁했다. 홍콩의 앞날도 그곳의 공기처럼 불투명하게 보였다.

호텔은 하버뷰라는 단어가 붙은 곳이었다. 창문을 열면 바다보다는 바로 앞 아파트의 내부가 더 잘 보이는 비좁은 호텔에서 암울한 홍콩의 미래를 염려했다. 하버뷰(harbor view)가 아니라 프라이버시뷰(privacy view)라고 해야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호텔에 대한 염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귀국했다. 아침이면 커피를 내리고 낮에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우유와 콩나물을 산다. 저녁이면 산책을 하며 공원을 활보한다. 이곳에서 나는 안전하다. 흔들리지 않는 일상을 밟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내가 디디고 선 평화, 내가 누리는 민주적인 세상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가 필요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군홧발과 몽둥이에 쓰러졌을까. 그렇게 피와 바꾼 민주화. 지금 홍콩이 그 길을 가고 있다. 중국을 상대로.

당장이라도 먹구름이 밀려와 덮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홍콩. 그러나 낙담하기는 이르다. 버터필드는 역사적 사건들의 성격에는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역사를 틀어버리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했다.

홍콩의 일기 예보를 내 맘대로 해본다. ‘오늘 중국의 개입으로 먹장구름이 몰려와 어둡겠습니다. 시위대의 게릴라식 저항으로 공기도 탁하겠는데요. 이에 따라 증시도 기온이 급락하겠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민주화 바람이 밀려와 비구름을 밀어내고 대기도 맑을 것입니다.’라고.

쌀쌀한 바람이 상쾌하다. 내 나라의 공기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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