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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팍팍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시름 속에 싸여 산다.

있는 자는 있는 자 대로 없는 이는 없는 이 대로 나름의 시름이 있다.

나도 시름을 안고 산다. 때로는 이룰 수 없는 욕구에 부대끼고 때로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매일 전화를 해오는 한 친구가 있다. 호구지책으로 나가는 직장상사가 그렇게도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자는 늙고 병들어 판단력도 흐리고 걸핏하면 화를 내고 만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 비위를 맞추는 것이 바윗돌을 옮겨 태산을 이루는 만큼이나 이 친구에겐 무겁고 힘들다.

단 하루도 마찰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다. 그런데도 좁은 사무실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주쳐야 한다.

금실 좋은 부부도 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싸운다. 하물며 옹고집의 노인과 그 친구 사이를 말해서 무엇 하랴.

나는 그 친구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준다. 그게 내가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도 직장생활을 하며 상사를 떠받들고 살았다. 하루하루가 나에겐 전쟁터 같았다. 그 갈등의 세월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늙어 죽는 쪽을 택하겠다. 나름대로 편안한 삶을 누리는 나에게 그 친구의 전화는 늘 남의 일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딱하고도 안타깝다. 더구나 도와줄 수가 없으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은 출근하기 바쁘게 호출을 하여서 무슨 일인가 하고 책상 앞에 앉으면, 대뜸 한다는 말이 김 대리의 남편은 이름이 나빠서 직장을 가져도 형편없는 말단직에 머물 것이란다. 어디 그뿐이 아니다. 천금 같은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주례사를 자신을 세우지 않았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당장 사표 내고 나가라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굴욕적 인격 모독을 일삼는 그런 상사였다.

그런데도 참고 견디며 그 직장에 머무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친구의 하소연을 듣고 있노라면 갑질의 농도가 너무 높아 당장 고발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기야 요즘 인터넷이나 신문을 읽다 보면 이와 비슷한 목소리들이 자주 오른다.

하지만 그가 짊어지고 가는 시름이 끝이 안 보인다. 그 직장에 나가는 한 친구는 그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게 인생살이기 때문이다. 시름없는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모두를 버리고, 내려놓고 살기로 작정을 한 나에게도 시름은 있다. 문득문득 나를 괴롭히는 사소한 일들이 어찌 없겠는가? 그럴 때마다 나를 달랜다. 잊어라. 버려라. 이것이 인생이거늘….

그러나 내가 겪는 생의 시름과 지금 그 친구가 맞이하는 가슴속 시련은 농도가 다르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대신 그 친구의 삶을 살아주고 싶다. 그러나 그것도 말이 아닌 소리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이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사주팔자가 따로 있다. 그걸 피해갈 수는 없다. 오직 죽음만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절벽 같은 시름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또 하루가 밝았으니 또 다른 시련이 그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평탄한 길보다 삐딱한 언덕길이 더 많은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그 친구에게 평안한 하루가 되기를 빌어줄 뿐이다. 오직 이 간절한 기도만이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참으로 인생은 시름 많은 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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