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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사의 시선]송년회와 계영배(戒盈杯)

 

 

 

12월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을 비롯 속해있는 크고 작은 조직에서 한 해를 보내는 송년 모임을 갖는다.

그간의 아쉬움과 안부를 나누며 서로 간 친목의 시간을 가지는 자리인데 술이 빠지지 않게 주를 이룬다. 술은 기분이 좋아서 마시고, 안 좋아서 마시고 감정에 따라 일상에 가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 술을 마시게 되면 솔직해진다. 그간의 좋았던 것과 서운했던 것 그리고 평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술기운을 빌어 표현하기도 한다.

아울러 술자리에서 일종의 의식처럼 빠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건배와 건배사 이다. 건배사는 모임에서 축사의 의미로 모임의 대표를 비롯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술잔을 들고 간단한 인사를 하게 된다.

건배사에 한해의 아쉬움과 함께한 사람들 간의 미래에 대한 바램과 기원을 담아내는 것도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와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공존하여왔다. 술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생각되어‘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불리는 반면에 부정적인 면에서 광약(狂藥)’이라고도 불렸다.

술을 마시니 근력이 생기고 묵은 병이 낫는다고 하여 음주를 권장함은 옛 기록에서 흔히 보는 예이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나침이 부족함 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몸에 좋고 또 모임의 분위기를 돋우는 술이라 할지라도 지나치면 술기운에 따라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운 일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분위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술에 관해서 계영배라는 술잔이 생각난다.

"계영배"라는 한자는 '가득참 을 경계하는 잔' 이라는 뜻으로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잔의 일정한 수위를 넘으면 술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자인 하백원이 술을 가득 채우면 새어나가는 잔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비슷한 시기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는 강원도 홍천 지방의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설백자기 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후에 자신의 방탕한 삶을 뉘우치면서 계영배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이 잔은 후에 조선후기의 거상 임상옥 에게 전해지며 이 잔을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족함보다 지나침에 의해서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자초하는 경우를 겪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의 역량을 과신하거나 타인과의 경계 없는 무례함도 과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자신이 가진 힘, 상대보다 많은 지식을 보여주려 애쓰지 말고 조금은 부족한 듯 보여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이맘쯤이면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는 표현을 사용하기에 거리낌이 없는 것처럼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잖은 어려움과 별별 일들을 겪어 왔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나를 과신한 교만함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헤아려 처신하지 못한 정체성 의 모호함으로부터 주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모임과 술자리가 잦은 연말에 가득 넘치는 술잔이 아닌 잔의 7할에 머무르듯 부족해 보이고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을 담은 계영배의 의미를 새겨봄도 바람직해 보인다. 송년회는 먹고 마시고 현실을 망각하려 취하는 자리가 아니라 겸허하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고 서로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전하며 상대의 마음을 구하는 그런 자리가 되고 현실의 무게가 혼자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삶의 과정이라는 동질감을 통한 자기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올 송년 모임에는 허탄한 정치적 사안을 술안주로 삼아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술은 백약지장이 될 수 있고 광약도 될 수 있듯이 힘겨운 현실 속에서 계영배의 미덕을 지닌 언행이 필요한 때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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