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몇 달째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눈을 꼭 감고 천을 세고, 만을 세도 정신은 또렷하다. 심야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며 해묵은 영화들은 본다. 재탕 삼탕 우려내는 영화도 지루하다. 책장을 넘겨보지만 집중은 되지 않고 눈만 아프다.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지만 그럴수록 달아나는 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벌떡 일어나 길 건너 아파트를 바라본다.

더러 불이 켜진 집도 있지만 고요하다. 저 네모난 상자 안에 사는 사람은 무슨 생각과 무슨 일을 하며 살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행복에 조건이란 무엇일까 어디까지를 행복이라 말하고 어디서부터 불행이라는 이름이 붙여질까. 마음의 크기는 어디서 정하는 걸까. 넋두리를 쏟아내다 보면 지나던 달이 창문을 넘어와 거실 깊숙이 그림자를 남기고 이럴 때 시계의 초침은 더 요란하다.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이 들고 아침준비 시간에 맞춰놓은 알람이 한참을 울고서야 비몽사몽 일어나 식사준비를 한다.

불면증이 생기기 전에는 머리만 땅에 대면 잠이 오곤 했었다. 잠자리가 바뀌어도 상관없고 심지어 커피 잔을 들고도 졸 때면 복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말이 달갑지가 않았다. 잠 안 오면 밤 새워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 되지 잠 못 드는 것이 뭐가 아쉬운가 하는 반문을 하곤 했다. 혼자만의 여유 있는 시간이 될 거라는 상상과는 달리 불면증은 고약했다.

갱년기라는 생의 주기가 몰고 온 합병증이다. 처음엔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한겨울에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이내 한기가 몰려왔다. 별 것도 아닌 일이 서운하고 화를 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까칠해졌다.

첫 아이날 때의 서운함을 비롯해 정말 사소한 일까지도 소화되지 않은 채 꾸역꾸역 올라왔다. 분명 마음에 고장이다. 순간순간 잘 견뎌낸 시간들을 왜 끄집어내어 곱씹느냐고,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좀 더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하라고 머리는 주문하는데 가슴은 자꾸 오래된 일들을 들춰내어 심장에 쥐가 나게 한다.

갱년기, 호르몬의 변화로 오는 몸의 이상 증후군이다. 여자만이 아닌 남자도 겪어내는 일종의 노화를 부르는 현상이며 살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다. 어머니는 갱년기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자식 여러 남매 키우다보면 그런 것이 껴들 틈이 어디 있냐고, 그저 몸 편하고 마음 한가하니 몸이 시비를 거는 거라며 운동을 하던지, 집안일을 더 하던지 하면서 몸에게 여유를 주지 말라고 하신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몸이 하는 말을 외면할 수 있을까. 지천명을 지나 이순의 시간이다. 중년을 거쳐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남은 삶의 질도 달라질 수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가는 시간이 너무 빨라서, 자신의 생애가 하루하루 짧아지는 것 같아서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도 한다.

제각각 삶의 관점과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전환기를 잘 맞이할 수 있다. 불면증이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 동침을 요구하고 일상의 패턴을 흔들지라도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여기고 극복한다면 좀 더 수월할 수 있을까. 12월도 중순으로 치닫고 있다. 12월은 더 빠르게 달아날 것 같다. 달랑 남겨진 한 장 달력의 숫자를 보며 남겨진 미래를 설계해본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