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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의 시선]120원

 

 

 

‘법대로’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주로 의견이나 이해가 엇갈릴 때 쓰는 말이다.

갈등이 많은 요즘에 더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누가 들어도 명약관화하고 옳은 말이다. 별도로 덧붙일 말이 없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말이라서 그렇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떤 때는 힘센 자의 유용한 무기를 의미하고, 어떤 때는 약자의 막막한 두려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경직성을 비꼬는 유머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은 법을 공평무사하다고 생각한다. 별다른 결점이 없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특정한 이익이 개입되어 있기도 하고 불순한 목적이 의도되어 있기도 하다. 또 의도되지 않은 허점도 많다. 그렇기에 국회가 법을 만들 때마다 각 이해당사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싸운다. 문구 하나를 놓고도 사생결단식으로 아귀다툼을 벌인다. 요즘 눈만 뜨면 필리버스터와 패스트트랙 얘기다. 온 나라가 시끄럽다. 서로 상대를 향해 ‘법대로’가 아니라며 삿대질이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법 통과를 오열로 호소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치적 계산만이 작동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법을 만드는 그들 스스로가 법의 정당성과 권위를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고 있다.

그런 입법 과정을 보고, 그 어느 누가 법을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하겠는가. 또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렇기에 ‘법꾸라지’라는 신조어가 생겨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이로워야 한다. 법에 피도 눈물도 없음을 다 안다. 하지만 공평무사를 전제로 따르는 것이다. 대부분 소시민은 ‘법대로’ 하면 긴장하며 움츠러들기부터 한다. 법이 개입되는 것을 꺼린다. 간혹 법에 대항하느라 철탑에 올라가고 단식을 하지만 그다지 힘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부류는 법을 편리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여 이득을 챙긴다.

지난 가을 퇴근길이었다. 수원역 정류장에서였다. 평소에도 혼잡스러운 곳이다. 그날은 더 붐볐다.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승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되었다. 필자가 타려는 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버스가 당도하자 승객들이 몰려들어 줄이 만들어졌다. 승차가 진행되는가 싶더니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버스가 연이어 당도했다. 멈춰선 버스 뒤로 행렬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짧은 1~2분이지만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버스에 오르자 중년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터치했다는 말을 반복하며 억울해하고 있었다. 수모를 견뎌내느라 죽을 맛인 것 같았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오히려 무임 승차자를 색출했다는 목소리로 “카드에 130원 밖에 없어 안돼요”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버스 출발을 지연시키며 어서 250원을 내놓던지, 버스에서 내리던지, 결정하라며 압박했다. 만약 결정하지 않으면 운행을 중단하겠다는 투였다. 필자는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환승비가 250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도 엉겁결에 당하는 봉변 같았다. 결국, 필자의 대납으로 출발하기는 했다.

버스 운전기사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법대로’ 처리했을 뿐이다. 회사의 규정과 매뉴얼을 따랐을 것이다. 버스에 설치된 CCTV 녹화에 따른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다. 디지털시대가 만들어내는 빈틈없는 사회 경제적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씁쓸하다.

물론 120원이 적은 금액이므로 가치를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또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얼렁뚱땅 넘어가자는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국민소득은 3만 불이 넘는다. 대한민국의 여권 파워가 세계 2위이다. 여러모로 살만한 나라이다, 여유가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인심은 점점 더 야박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법대로’라는 말이 왠지 융통성 없고, 인정머리 없고, 무지막지하게 느껴진다. 필자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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