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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영화에 중독된 사회

 

 

 

 

 

한 사람이 얼만큼 영화를 보아야지 ‘중독’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의 기준은 따로 없다. ‘영화보기가 취미’라거나 ‘영화보기를 좋아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다. 가끔 ‘얼마만큼 좋아하느냐’고 되물어보면, 구체적으로 몇 편이라고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여튼 좋아한다’고 하는 정도다.

‘24번째 1천만 관객 영화’가 나왔다는 컬럼을 쓴 것이 지난 6월이다. 2019년이 끝나가는 12월, ‘27번 째 1천만 관객’ 영화가 나왔다. 그 사이 4편의 ‘천만 영화’가 등장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는 2014년에 천만 대열에 든 ‘겨울왕국’의 속편이다.

올해에만 ‘극한 직업’, ‘어벤저스 엔드게임’, ‘알라딘’, ‘기생충’, ‘겨울왕국2’ 등 5편의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한국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가을에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은행 떨어지는 수준이다. 다섯 편의 결과를 합치면 대략 6400여 만 명에 이른다. 아직도 흥행을 계속 중인 경우도 있으니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올해의 전체 관객이 2억2천만 명 안팎으로 예상하는데, 다섯 편의 흥행이 전체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한국영화가 첫 1천만 관객을 달성한 것은 2003년 12월에 개봉한 ‘실미도’로 이듬해 2월에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한국영화가 과연 넘어설 수 있는 숫자인가라며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때였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들고, 김연아 선수가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 같은 충격과 환호를 쏟아냈다. 한국영화 제작역량이나 흥행구조, 성과가 획기적으로 변했다는 신호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자신도 참여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앞으로 흥겨운 분위기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다짐하는 전환점 역할을 했다.

처음 목격하는 결과를 두고, 돌발적으로 튀어 나온 사건인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시작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영화계 사람들조차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고, 누구에게 물어볼데도 없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등 ‘1천만’ 영화들은 잇따라 나왔다. 더 이상 ‘어쩌다 생긴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입을 다물었다.

올해 나온 5편의 ‘1천만 영화’는 큰 흐름의 변화를 보여준다. 한국영화가 2편, 미국영화 3편으로, 외국 영화가 한국영화를 제쳤다. 전체로 본다면 27편 중 한국영화는 19편, 외국영화(전부 미국영화이지만) 8편이다. 여전히 한국영화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올해 5편의 구성에서는 외국영화가 그 추세를 바꿨다.

‘1천만 관객’ 시대가 열린 이후 오랫동안 흥행 판도는 한국 영화의 압도적인 주도였다. 미국 대작 영화들조차 한국영화의 개봉 일정을 살펴야 할 정도였고,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서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통했다. 20편의 천만 영화가 나오기 까지에는 미국영화 ‘아바타’ 한 편만 포함됐을 뿐 나머지는 모두 한국영화가 명단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싹쓸이 독주나 다름 없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4)은 그 같은 추세를 바꾸는 전환점 역할을 했다. 큰 흥행은 어렵다는 애니메이션이 천만 관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았다.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어벤저스’ 영화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롭게 목록을 채웠다. ‘겨울왕국2’ 흥행은 ‘겨울왕국’ 연작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시선을 모았다.

무엇보다 눈에 띠는 현상은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열광이 ‘사랑’이나 ‘관심’을 넘어 중독이나 광란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 5천만 규모의 사회에서 1천만 영화가 팝콘처럼 튀어나오고, 연간 2억 명 넘는 관객이 영화관을 찾는 일이 수년째 계속되며, 영화 외의 문화소비는 심각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심각한 문화적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경고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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