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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고장 난 시계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 마음을 급하게 한다. 마지막이란 늘 다그치는 습성이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는 힘이 있는지 느슨했던 마음도 마지막이란 단어 앞에선 뒤를 돌아보게 한다.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누구는 24시간이 모자라 잠잘 시간을 쪼개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시간이 안가서 하루가 지겹고 힘들다고도 한다.

음악학원을 방문했다. 오후에 방문했는데 벽시계는 11시 15분을 지나고 있다. 몇 번 시계를 힐끔거리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원장이 그 시계 틀린다며 시간을 늦게 맞춰놓은 이유를 설명한다.

수강생이 수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시간에 더 집중한다고 한다. 학원을 방문한 시간과 퇴원할 시간을 재느라 시계만 쳐다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시간을 다르게 해 놓았다는 설명이다. 피아노 치기는 싫고 친구들과 놀고는 싶은데 방과 후 몇 군데씩 학원을 가야하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심지어 시계 볼 줄 모르는 어린 아이도 시계의 큰 바늘이 어디까지 가면 엄마가 데리러 오느냐고 묻고 또 묻는다고 한다.

요즘은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일몰이 되다보니 하루가 더 짧게 느껴진다.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어두워지면 귀가를 서두르게 된다.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져도 하지 무렵과 동지 무렵의 시간차는 현저히 다르다. 더구나 한해의 마지막이라는 12월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또한 마음을 부추기는 요인이기도 하다.

새해를 시작할 때는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연말에는 정말 뿌듯하게 한 해를 정리할 수 있도록 살자고 다짐하며 출발하지만 이맘때는 늘 아쉬움과 게을렀음에 대한 자책을 하곤 한다.

보고자 정해놓았던 책은 절반도 못 보았고 악기 연습도 중단했고 글도 열심히 쓰지 않았다. 딱히 바빠서라고 할 수도 없다. 늘 그만큼의 일과 그만큼의 시간이 주어줬지만 성실하지 않은 것이 게으른 것이 원인이다.

고장 난 벽시계처럼 달력의 날짜도 고장 날 수만 있다면,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한 두어달 정도 뒤로 물리고 싶다. 하루하루가 그리 짧다기보다는 어영부영하다보면 일주일 가고 멈칫대다보면 한 달 지나고 그러다 일 년 또한 금방이다. 특히 12월은 이런저런 행사며 송년모임에 다니다보면 더 빨리 간다. 밀린 일을 12월에 한다는 것은 안하고 버티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나이 먹을수록 세월 달아나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도 잠깐이다. 떠밀려가는 세월이 되지 말고 내가 이끌고 가는 시간이 되자고 말하지만 실상 그렇게 열심히 살아내지는 않았다.

깨알같이 많은 날들 속에 오늘 하루쯤 적당히 게으름 피우고 적당히 시간 보내고 그리고 내일 오늘 몫까지 다하면 되겠지 하는 안이함이 반성과 후회를 남긴다. 턱을 괴고 창밖을 본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 그리고 빠르게 지나치는 차량이 일으키는 먼지와 소음들 모두가 일상이고 하루를 살게 하는 요인들이다.

올해는 나라살림도 어려웠겠지만 자영업자인 나도 힘들었다. 몸과 마음이 고장 난 벽시계처럼 세상의 흐름에 제대로 합류하지 못한 해이기도 하다. 마음의 중심을 바로세우고 정신을 다잡아 얼마 남지 않은 날짜들을 충실히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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