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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어른이

 

 

 

‘어린이’를 떼고 나면 되는 것이 어른이일까. 몸은 이미 어른이 된지 오래지만 아직 정신적인 성숙이 그에 따르지 못하고 미성숙한 생각과 행동을 벗지 못하거나 스스로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어른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인류가 생겨났다.

어린 시절엔 어른이 공부도 안하고 결석하면 큰일나는 학교도 가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누리고 향유하며 자신의 삶의 형태에 대한 고뇌는 없이 어린이의 발랄한 삶을 지나치게 간섭하며 횡포하고 있다 생각한 적이 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어린이에게는 제약하는 세상의 모든 나쁜일을 누구의 제지도 없이 거침없이 내놓고 하는 뻔뻔한 배짱이 얄미웠지만 내심으로는 그런 방만한 자유가 부러워 얼른 시간이 흘러 어른의 대열에서 함께 그 모든 것을 누릴수 있기를 바랐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능력과 노고로 아쉽지 않은 돈이 있었고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깨끗한 빨래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쾌적한 환경은 우리의 아무런 노력과 대가 없이도 늘 곁에 있었다. 가끔 어머니의 일방적인 취향으로 시장에서 사 오신 똑같지만 색만 다른 옷 두 벌 중에 여동생과 신경전을 벌이며 하나만 고를수 있는 제한된 자유말고는 어떤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던 어린시절이었다.

걸어다닐 일도 뛰어다니고 다 크도록 골목에서 손등이 터질때까지 놀던 어린 시절을 마감한건 중3 초 생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망아지처럼 겅중거리던 뜀새는 어느사이 얌전해지고 책도 연애소설을 읽어야 어울리고 말도 좀 더 생각한 후에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른이 되려면 그에 걸맞는 걸음새와 행동거지가 필요하다고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다. 마치 행동이 어린이와 어른을 구분짓는 경계이기라도 한 것처럼. 빨리 어른이 되려면 어른이 가르치는 것들을 빨리 받아들여야 했다.

드디어 19살의 생일에 받게 된 주민등록증은 나라가 인정한 진정한 어른의 징표라 생각했다. 난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마음껏 누릴수 있게 되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교복을 벗지못한 나는 어제의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양식이 그대로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대학을 입학하고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미팅과 동아리활동도 하면서 술맛도 보며 이젠 진정 어른이 된 듯 느꼈다. 부모님께도 그동안 수동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간섭하지 마시라며 말대꾸를 하며 어른의 권리는 만끽했지만 어른의 책임은 진 적이 없었던 나는 여전한 어린이였다.

대학졸업하기 한 달 전에 3학년 때 미팅으로 만난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육체적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새로운 세계였다. 어쩌면 이젠 누구나 인정할만한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미성숙한 몸만 어른이었다.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며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무엇이든 거리낄 것 없어 보이던 어른의 권리만을 누리기보다는 책임감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노력과 수고, 헌신과 배려, 희생을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아이들을 위해 쏟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편안한 잠자리와 깨끗한 빨래, 맛있는 음식과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며 열심히 산 것이다. 이것은 어른의 덕목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른이 되려 여태껏 애썼는데 이렇게 어린이를 동경하게 될 줄 몰랐다. 학교도 안가고 공부도 안하고 제약도 없는데 스스로의 철창은 너무나 두꺼워 차라리 제약 투성이 인것처럼 느껴졌던 어린이의 가벼움이 새롭게 부러워진다.

배운적 없는데 그래야만 하는 것들에 갇혀 책임과 수고에 허덕이는 어른인 내가 안쓰럽다. 그래서 이젠 어른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보니 어린이를 즐기지 못한 시간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으로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직 어린이 이고픈 어깨 가벼운 ‘어른이’가 되고픈 것이 기원일 것이다. 나도 그 인류쯤 언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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