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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경영]세계경영과 김우중 회장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1980~90년대 ‘세계경영’을 펼쳤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12월 9일, 향년 83세 나이로 별세했다. 한국 경제 성장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 중 한 명으로써 비록 IMF 경제위기를 맞아 무너지긴 했지만, 그의 창조적인 도전정신은 지금도 많은 경영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세계경영을 꿈꾸던 기업가’ VS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사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떠올리면 등장하는 수식어이다. 이처럼 김 전 회장은 생전에 극명히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우리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임은 분명하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김 전 회장은 도전으로 축약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의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특히 일찌감치 전 세계를 무대로 경영활동을 확대해 나가면서, 한국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줬다.

김 전 회장은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 씨와 손을 잡고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하며 ‘샐러리맨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대우는 대도섬유의 ‘대’와 김우중의 ‘우’를 따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김우중 회장은 그야말로 일 중독자였다. 사업초기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 출근하는 차 안에서 면도를 하고 물수건으로 세수하고 식사를 했다. 골프는 시간이 없어 치지 않았고, 고객과의 사업상 약속 때문에 하루 저녁에 무려 세 차례나 식사를 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김 전 회장은 해외체류기간이 1년에 280일을 넘길 정도로 해외사업에 사활을 걸었고, 징기스칸처럼 세계를 누빈 탓에 사람들은 그를 킴기스칸이라고 불렀다. 그와 대우를 기억하고 있는 나라들은 여전히 많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당시 정부의 수출 중심 정책으로 대우는 성장을 거듭한다.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제품의 수출을 통해 기업을 급성장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저금리 정책자금을 활용해 인수합병을 추진하면서 기계, 자동차, 조선뿐만 아니라 전자, 정보통신, 금융업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간다. 1998년 말 대우그룹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수출액(1천323억 달러)의 14%나 차지했다. 자산규모 기준으로 대우그룹을 현대에 이어 대한민국의 재계 순위 2위로 성장시키는 신화 같은 기적을 이뤄냈고, 해외로 뻗어 나가면서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밑거름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97년 11월, 갑작스레 다가온 외환위기로 김 전 회장의 ‘세계 경영’ 신화도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1998년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제한조치에 따라 회사채 발행에 제동이 걸리며 대우그룹은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1999년 말까지 그룹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대규모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거대 그룹 대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우중 회장은 무모한 차입 경영으로 21조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와 9조9천800억원 규모 사기대출 혐의로 17조9천253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선고받고 해외 도피 생활까지 하면서 ‘실패한 경영자’라는 지탄을 받았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의 부채 규모는 89조원에 달했다. 1997년 우리나라 GDP(530조원)의 17% 수준이다. 정부는 대우그룹을 살리려고 30조원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30조원의 혈세 대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여전히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있다.

새로운 길을 용기 있게 개척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경영자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김 전 회장이었지만, 그의 삶은 기업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김우중 회장의 타계로, 이제 대우사태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세계를 무대로 기업의 가치를 높였지만, 방만한 경영과 분식회계로 국가경제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물론 한국경제에 개척의지를 불어넣고, ‘세계경영’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김우중 회장의 위대한 도전정신은 마땅히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김우중 회장의 일생에는 명암이 있다. 그가 남긴 명암과 대우사태를 제대로 되새기는 것이야 말로, 마지막으로 그를 기억하는 의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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