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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학생에 맞춘 교육 그렝이질

 

 

 

흙바닥 위에 세운 나무 기둥은 썩고 미끄러지기 쉽다. 당연히 오래 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기둥 밑에 주춧돌을 받쳐 놓고 집을 지었다.

그런데 자연에서 얻은 주춧돌 모양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이지만 톱으로 자른 기둥의 단면은 평평하다.

그 때 옛 장인들은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기 위해서 단단한 돌을 평평하게 깎는 것보다 깎기 쉬운 기둥의 단면을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단면과 꼭 맞도록 깎아냈다.

이렇게 주춧돌의 표면과 기둥이 꼭 맞도록 그 단면을 깎아내는 것을 ‘그렝이질’이라고 한다. 그렝이질이 잘된 기둥은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단단하고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지진이 났을 때도 쉽게 밀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

이처럼 두 물체가 만날 때 하나의 모양이 거칠고 울퉁불퉁해도 다른 하나의 모양이 그 거친 모양에 맞추어 감싸 줄 수 있다면 그 둘의 만남은 견고한 결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의 실상은 그 반대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여 불확실한 미래사회를 열어가야 할 학교가 경직되고 획일적이며 변화에 둔감하다. 교육제도나 시스템을 변화시키지 않고 아이들을 교육제도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나무기둥의 단면에 맞추기 위해 울퉁불퉁한 주춧돌을 평평하게 깎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잠재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어쩌면 타고난 잠재능력을 후천적으로 바꾸는 것은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단면을 평평하게 깎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학교는 서로 다르게 태어난 아이들에게 모두 같은 것을 학습시켜 지식과 생각, 행동을 비슷하게 만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학교에서 어렵게 같아지고 나면 사회에서는 다시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아이들을 모두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서는 다시 달라지라고 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달라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다양한 잠재능력을 계발해 주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같아지게 하는 교육이 아닌 달라지게 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들의 잠재능력에 따라 교육제도나 시스템의 구축과 운영에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아인슈타인 같은 빼어난 천재의 경우에 뇌가 지닌 엄청난 능력 중 겨우 6~7% 정도를 활용하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잠재력의 3%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 아인슈타인이 “내 학습을 방해한 유일한 방해꾼은 바로 내가 받은 교육이었다”라고 한 말을 우리는 가슴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잠재능력을 충분히 계발하여 자아를 실현시키는 일이다.

일부 교육학자들은 교육이란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라고 주장한다. 이 말 속에서 교육은 교육자가 주도하고 학습자를 그 대상으로 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교육의 의미가 학습자 중심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교육은 ‘학습자가 타고난 잠재 능력을 충분히 계발하여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촉진·지도·관리하는 적극적인 활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자 중심으로 교육이 변화되어야 한다.

학습자 중심의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공하여 잠재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다. 인간은 누구나 잠재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능력을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교육이 그 환경을 공정하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

“학습과 성장의 공정한 기회 제공을 통한 모든 학생의 잠재력 계발과 자아실현”이 우리 교육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학생에 맞추어 우리 교육을 그렝이질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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