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경기논단]단축키와 인공지능

 

 

 

어떤 정책이 장기간 시행되면 흐지부지해지거나 변질·왜곡되기도 하지만 절실한 것이면 어떻게든 이루어지게 된다. 1980년대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연수도 적절한 사례의 하나일 것이다.

그 연수는 199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거의 모든 연수에 단골 강좌가 된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주로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전문연수로 추진되었고 마침내 연차적으로 순번을 정해놓고 그 대상자를 차출했는데 연수 결과가 일일이 등재되어 모면할 방도도 드물었다.

연수 내용은 간단한 문서 작성을 통한 단축키의 기능 설명 등이 중심이었고 아직 컴퓨터가 전면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어서 해를 거듭할수록 답보적인 경향이었으므로 따분할 때가 많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되는 단축키의 기능들은 상대하기조차 싫어서 어떤 핑계를 대면 빠질 수 있을지 온갖 궁리를 다했다. 허구한 날 뭘 하겠다고 별 소용도 없는 타자 연습을 하고 F1, F2, F3…을 암기하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돌연 PC(personal computer)가 앞앞이 배당되었다. 한동안 책상 위에서 덩그러니 자리만 지켰지만 그것도 한 때여서 곧 너도나도 부팅을 시작했다. 주로 문서작성이긴 해도 재미가 없지 않았고 단축키 기능이 두렵지도 않았다.

그동안 컴퓨터 강사들은 자신들의 전유물인 PC를 잠시 빌려주는 것처럼 까다롭게 굴었고, 작성한 문서를 동료들에게 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는 했지만 이제 보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커다란 원고뭉치를 순식간에 배달해주었고, 장차 사무실에서 종이가 사라진다는 거짓말과 달리 작성한 문서를 그 자리에서 두 벌, 세 벌, 열 벌, 스무 벌… 마음껏 인쇄해주어 종이 소모량이 한없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설명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컴퓨터는 따분하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똑똑하고 친절하고 순종적인 친구여서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타자 기능쯤은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것이었고 단축키의 기능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그렇게 가르쳤는지, 그동안 만났던 강사들의 의도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이게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었고, 마침내 “세계에서 컴퓨터를 제일 잘 쓰는 국민”이라는 슬로건이 정책의 정점을 이루는 걸 보게 되었다.

그로부터 20년, 그 컴퓨터에서 태어난 인공지능들이 각 분야에서 사람을 제치고 나서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산업혁명이 찾아왔다. 문득 그 컴퓨터 강사들은 무얼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혹 인공지능이나 새 산업혁명도 그들의 전유물로 여기고 싶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교사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이러한 변화가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은 교육과정 반영이 전면적이지 않고 교과서 내용 반영도 미미해서 짐짓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지식주입식 교육이 막강한 전통으로 유지되고 있고 일거에 그 전통을 무너뜨릴 만한 정책도 보이지 않아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외면하고 안주하기에도 편리할 것이다.

괜찮을지 모르겠다. 5지선다형 문항으로 사고력, 문제해결력은 물론 창의력까지 평가해낼 수 있다는 희한한 주장이 먹혀들고 있지만, 인간세상은 이미 모든 장면에서 대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 세력은 전면적이어서 좌고우면도 끝난 것 같다. “데이터 없이는 발전도 없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마차가 사라졌듯 AI를 모르면 설자리도 없다”는 주장은 압박처럼 들린다. “코딩은 기술이 아니라 소통이다” “부모와 교육자, 교육정책 결정자들은 창의력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조성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은 점잖지만 교육의 방향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이런 일들을 우리가 왜 혹은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을 놓아주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일일이 가르쳐주는 친절은 포기하고 스스로의 열정으로 문제를 정해서 의논하고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을 중시하는 것이 현명할 수 밖에 없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