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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뒤샹의 체스 열정

 

 

 

 

 

1923년 미국의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는 뒤샹이 작품 활동을 접고 체스 선수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소문이 날만도 했던 것이 당시 뒤샹은 일 년에 몇 차례나 국제 체스 경기에 출전했고 작품 활동을 매우 등한시했기 때문에다. 심지어 니스, 파리, LA 등에서 열린 체스 경기에서 그는 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24년 오토 노르망디 체스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기사는 뒤샹이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인 체수 선수이며 매우 직설적인 전략을 쓰는 선수라고 평한다. 그러면서 다다이스트(Dadaist) 뒤샹이 체스 판 앞에서만큼은 다다이스트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뒤샹이 처음 체스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뉴욕에 정착하고 난 바로 다음부터였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인 1919년 미국에서는 금주법이 내려졌다. 뉴욕의 예술가들은 그 시절 뉴욕의 거리가 적막했었다고 술회한다. 금주법이 내려졌다고 사람들이 전혀 술은 마시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높은 값을 지불하면 밀거래되던 술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술값은 치솟았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공장과 가게가 뒤섞인 공동주택 내의 작업실은 안락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그는 친구들과 모여 앉아 체스로 외로움과 적막함을 달랬다.

이후 뒤샹은 거의 매일 밤 체스를 두었다. 처음엔 동료들과 두다가 이후에는 체스 모임을 찾아다녔다. 밤새도록 체스를 두다가 오후에야 기상하는 날이 낮아졌다. 그러다 몇 년 뒤에는 체스 경기에 출전하느라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체스 경기가 반드시 취하고 싶은 심정을 달래는 수단은 아니었다. 뒤샹에게는 삶의 방식이 곧 작품 활동이었다. 그는 수많은 체스 경기를 통해 확인해보고 싶었다. 과연 체스 판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그는 미신이나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을 믿지 않았다. 아직 그것을 설명할 정도로 과학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우연을 믿지 않았다. 체스 판위의 상황도 우연이 아닌 전략과 통계로서 굴러간다고 믿었고 그는 그것을 실험하고 있었다. 알파고가 발명되기 수십 년 전에 그는 스스로 알파고가 되기를 자처했다.

얼마 전 우연히 정재승이 쓴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을 읽었다. 사람의 뇌는 한 번 길들여진 습관을 고치기가 매우 어렵게 짜여 있다고 한다. 하루에 인간의 에너지 25%를 섭취하는 대식가 뇌가 매우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위해 습관적인 선택에는 극도로 적은 에너지만을 쓴다는 것이다.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뇌를 ‘새로 고침’할 수준의 노력이 든다. 평소 새로운 것, 낯선 것에 도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평소 그러한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은 뇌의 ‘새로 고침’에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던 예술가의 기이한 행보가 한 사람의 과학자에 의해 너무 쉽게 설명되어 김이 새는 느낌이다. 하지만 당시 뒤샹이 추구했던 바를 이보다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과학적 설명도 없는 것 같다. 뒤샹은 모든 고정된 생활과 관습을 부정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뒤샹이 보인 이상한 행보는 체스 경기뿐이 아니었다. 친구 만 레이의 도움을 받아 처음에는 로즈 셀라비였다가 이후에는 에로스 셀라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으로 변신한다. 만 레이는 그림은 집어치우고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것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고, 뒤샹도 최후의 유화를 완성한 후 이후 회화 작품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1927년에는 프랑스에서 ‘리디’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생활은 6개월 만에 끝났다. 이혼할 당시 그는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태도는 천연덕스러웠다. 그리고 역시 자신에겐 독신 주의자의 삶이 잘 맞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현대미술,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미술 등 수많은 장르를 개척하며 미술의 흐름을 뒤바꾸었던 화가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일변도로 점철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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