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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서 다시 빚은 한국 도자기

임진왜란·정유재란 식민지 거치며 끊어진 도자의 맥
해방 후 장인 1세대 이천으로 내려와 옛 도자기 재현
유네스코 지정 세계 공예도시 되기까지 역사 담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철저히 수탈당한 한반도 도자기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한 가닥 명맥마저 거의 끊어지게 됐다.

게다가 값싼 일제 사기의 범람으로 조선 자기는 더 이상 만드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이런 처참한 황무지에서도 도자의 숨결이 다시 싹을 틔웠으니 그게 바로 50년대의 서울 성북동 가마와 대방동 가마였다.

이후 여기서 일하던 장인들이 겨우 가마만 남아 있는 이천 칠기공장으로 내려와 고려청자를 재현하고 백자와 분청을 되살리게 되니, 이들이 바로 해방 이후 도자 장인 1세대에 해당한다.

오늘날 이천이 한국 도자기의 메카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 공예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 1세대 장인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천 도자기, 즉 한국 도자기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부활의 날개를 힘차게 펼칠 수 있었을까?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 도자기는 칠기만을 겨우 만들며 명맥을 이어오다 1950년대 칠기 장인들이 뜻을 모아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으면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고려청자를 재현해낸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기장인 인간문화재 청자도공 해강 유근형의 정열과 집념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고려청자의 재현품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의 경이로운 재현품으로 인해 고려청자에 관심을 가지는 당시 젊은 사기장들이 이천에 하나둘 모였고, 그것을 발판으로 유네스코 창의 도시로 지정된 이천에서 한국 도자가 부흥할 수 있었다.

이천 도예촌 1세대 대표 3인이라고 하면 해강 유근형, 광호 조소수, 도암 지순탁을 뽑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남곡 고승술, 이천의 3대 물레대장인 홍재표, 고영재, 이정하의 도자기에 대한 집념은 현재 이천에서 활동하는 400여 명의 사기장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한국 도자사를 풀어놓은 단행본 책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청자와 백자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저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세계 최고의 도자기였다’라는 사실 정도인데 이것 또한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다. 역사 교과서나 미술 수업에서도 청자와 백자가 우리의 고달픈 역사 속에서 어떻게 번성했고 일제강점기를 통해 어떻게 쇠망해갔으며 그것이 어떤 힘겨운 노력 덕택으로 부활했는지 가르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흙이 좋아 빚고, 굽고, 바르고 또 굽는 작업에 자신의 전 생을 바치는 사기장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이천 도자 이야기’는 한국전쟁 이후의 폐허 속에서 칠기공장만 몇 개 남았던 마을이 어떻게 한국 도자기의 메카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역사적으로 꼭 알아야 할 사실도 발견했다.

이 책은 한국 도자산업 부활의 역사 페이지를 채워가는 의미 깊은 작업으로서, 이천 도자기는 물론 한국 근대 도자산업의 부활과 중흥의 역사를 후대에게 상세히 알려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도자기는 가슴으로 다가가면 생명의 도자, 눈으로 바라보면 기품의 도자, 영혼으로 품어보면 은혜의 도자다./정민수기자 j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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