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경영] 갈라파고스 함정
[함께하는 경영] 갈라파고스 함정
  • 경기신문
  • 승인 2020.01.22 18:33
  • 댓글 0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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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경영학 박사
이종민
경영학 박사

 

우리가 자주 접하는 속담 중에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우물에서 보이는 구멍으로만 하늘을 보고 하늘이 작다고 하는 개구리처럼,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서 자기의 기준과 눈높이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미의 ‘갈라파고스 신드롬(Galapagos Syndrome)’이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갈라파고스 제도(Galapagos Islands)’에서 유래되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에콰도르 령인 갈라파고스 제도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자연선택론, 즉 진화론을 설명하는데 큰 영감을 준 장소였다.

이 제도는 남아메리카 대륙과 약 1천㎞ 정도 떨어져 있으며, 태평양 적도 주위에 위치한 19개 화산섬과 주변 암초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섬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았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고유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1835년 이 섬을 찾았던 다윈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계에서 다양한 생물과 동물의 진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갈라파고스의 생태계를 통해 생물의 진화론을 확립하며 세계 과학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종의 기원’ 개념을 제시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만든 상품이지만 자국 시장만을 생각한 표준과 규격을 사용하여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일본(Japan)과 갈라파고스(Galapagos)를 합쳐 ‘잘라파고스(Jalapagos)’라고도 불릴 정도로 일본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단어는 최고의 기술로 제작되었지만 세계시장과 단절되었던 일본 제품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일본은 소니, 파나소닉 등의 기업을 주축으로 IT분야에서 독보적인 발전을 해온 나라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다른 나라의 기업들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분석 결과, 세계적인 표준을 무시하고 내수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생산한 것에 그 원인이 있었다.

게이오 대학교수이자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I-mode)의 개발자인 나츠노 다케시는 2007년 일본 무선전화 시장보고서에서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명명했다.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 구축되었고, 네트워크 환경에 기반한 다양한 서비스 기술들이 시장에 선보였다. 하지만 일본의 IT기업들은 커다란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자국의 시장반응과 소비자들의 요구를 우선시하게 된다.

결국 기업들은 내수시장에 특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해 국제 표준에 기초한 세계 시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는 일본이 가진 기술수준과 혁신성이 세계 최초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세계 시장에서의 영향력 감소와 일본 IT시장마저 다른 나라에 내줄 위기에 처하게 되는 원인이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09년 소니의 휴대폰 사업 부진을 진화론에 빗대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보도했다. 브랜드 파워에 고취되어 내수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세계시장 흐름과 동떨어진 결과라는 지적이었다.

일본의 전자산업 역시 ‘갈라파고스 신드롬’을 피할 수 없었다. 세계 최초로 LCD(액정 디스플레이) TV를 제작한 샤프(SHARP)는 LCD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르며 OLED(자체발광 디스플레이)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각광받을 때, 기존에 우위를 가진 LCD분야에 투자를 고집하게 된다.

세계 TV 시장의 흐름은 해상도나 화면크기에 집중되었지만 이들은 브랜드 강조 전략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 과잉 생산과 경쟁력 하락을 겪으며 2011년도부터는 폭스콘(foxconn)에 경영권을 넘겨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국 삼성, LG 등 경쟁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갈라파고스의 자연은 아름답지만, 이처럼 갈라파고스라는 말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 ‘시대착오’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 속에서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국제적인 기준을 따라가거나, 선도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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