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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문화칼럼]시대가 변했다

 

 

 

 

 

아침부터 선배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년퇴임을 하고 명예교수로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는데 조교의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조교가 정교수 시절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었다. 선배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터이지만 이제 세상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것은 과거에 자신이 쌓았던 자체를 부정하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제 급변하는 세태 속에 아랫사람들을 대함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친근함의 표현은 희롱이 될 수 있으며 말 한마디라도 오해를 사면 자리 보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갑과 을은 바뀐 지 오래며 쉽게 표현해서 시부모가 시집살이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적응이 안되면 바로 꼰대 취급을 받는다. 꼰대의 사전적 정의는 노인네를 뜻한다. 꼰대스럽다는 의미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려 드는 것을 이른다.

시대가 변했기도 하지만 지금의 노인이 젊었을 때에도 노인을 폄하하며 꼰대라는 표현을 했다. 나부터 다른 이의 의견과 젊은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설파하려 든다면 그것이 잔소리이고 바로 꼰대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경험과 지식이 더 많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에 과연 그것이 젊은이들과 어울림에 있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아랫사람들의 태도 변화와 세태의 변화도 그러하려니와 너무도 급변하는 세상이 적응하기조차 버거운 상태이다. 그래서 화려한 과거는 잊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

올바른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훌륭했던 분들의 쓴소리는 필요하다. 그래도 그것은 타인이 듣고자 할 때 해당된다. 고령임에도 사방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하는 노교수는 예외이겠지만 초청받지 않은 상태라면 삼가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과거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말은 없다.

이런저런 상황은 어르신들을 우울하게 한다. 이제 화려한 과거는 잊자. 잊어야 한다. 자신의 저술이 수십 권에 이르고 산전수전 다 겪었어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더욱 잊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는 맞았고 이제는 틀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가 하는 말을 경청하며 그들의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

늙는다는 것도 억울한데 이런저런 것까지 감수해야 하는 건 어르신들로서는 견디기 힘들 수 있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1세기를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로만 보아왔는데 지금 우리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시대의 변화라는 강물의 흐름이다.

그래도 대다수의 후배들은 어르신 모시기에 모자람이 없다. 배려와 존경은 변치 않는 우리 사회의 미덕이다. 얼마 전 어떤 취임식장에서 잘못된 축사로 장내가 시끄러웠던 것을 보았다. 만인이 공분하는 섣부른 말은 비수가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세치의 혀가 망신을 불러오는 것이다. 어린이라고 해도 함부로 반말하지 않았던 소파 방정환 선생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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