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훈령이 상위법을 무력화하다!
[경기시론]훈령이 상위법을 무력화하다!
  • 경기신문
  • 승인 2020.02.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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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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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정치평론가·명지대 교수
신율
정치평론가·명지대 교수

 

법무부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전문의 국회제출을 거부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파장이 일고 있다. 법무부는 비공개 결정에 이유에 대해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청에 대해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건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 수사 진행 중인 피의자에 대한 피의사실공표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소장 원문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이유는 이렇다. 먼저 공소장 공개는 2005년 5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의한 조치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공소장 공개의 이유로 수사 과정을 투명하게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국민의 알 권리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와 사건관계인의 명예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공소장 공개를 거부한다면,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나 피의자 명예 그리고 사생활 보호와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던 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것이 만일 개혁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반(反)개혁적 인물이 되는 셈인데, 노무현 대통령을 반개혁적이라고 할 때 과연 몇 명의 사람이 이에 동의할지 모르겠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국민의 권리에 대해 고민을 가장 많이 했고, 개혁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 법무부가 이런 결정을 한 근거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훈령은 “유감스럽게도”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과 국회법의 하위에 있다. 국회법 128조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국회의 자료 요구 시 군사·외교·대북 관계에 관한 국가기밀이 아닌 경우 자료제출에 응해야 한다. 이런 법률이 있음에도 훈령을 가지고 공소장 전문 공개를 거부한 것이라면, 이는 법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상위 법률을 훈령으로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 국가기밀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사건이 국가 기밀이라면, 유사한 사건이었던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인 드루킹 사건도 공소장 전문 공개를 금지시켜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국가 기밀이 아니고, 지금은 이런 종류의 사건이 국가기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은 국민들의 알 권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부정 선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의혹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해당 사건이 부정 선거와 관련이 있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공통 가치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이 사건에 대해 소상히 알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추미애 장관은 “그동안 의원실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곧바로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되는 잘못된 관행이 있어왔다”고 말하고 있다.

울산시장 선거 관련 사건과 같은 정치적 사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의혹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가 “잘못된 관행”으로 포장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백번 양보해서 잘못된 관행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왜 하필 부정 선거 관련 의혹 사건부터 그 관행을 뜯어 고치겠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정권이 뭔가를 덮으려 해도 그것이 뜻대로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공소장 전문도 결국 특정 언론에 의해 공개됐다. 이를 두고 추 장관은 “확인해 보겠다”라고 한 모양인데, 공소장 유출 경위를 확인하기 이전에 훈령으로 상위 법률을 무력화 시킨 일부터 “확인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덮으려할수록 의혹은 커지게 마련이다.

현 정권은 스스로를 “촛불 정권”이라고 칭해 왔다. 촛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민주주의 수호와 발전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민주주의 수호는커녕 민주주의의 퇴행을 걱정하게 만든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정말 모르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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