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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소리의 판타지

 

 

 

선명하게 들리다 서서히 사라지는 저 소리들. 바로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 며칠 뒤 떠나게 될 해외여행 이야기를 하는 가 했지만 점점 희미해져가는 목소리.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출입문의 잔잔한 삐걱거림. 조금 더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들리는 몇 번의 웃음소리. 전화 통화를 하거나 간혹 투박하게 스쳐가는 발자국소리. 그 소리들 사이로 흩어지는 커피 향까지. 모처럼 편안했다, 카페에 앉아 듣는 그 다양한 소음들이.

흔히 긍정적인 소음으로 알려진 백색소음은 비교적 넓은 음폭으로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가지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가 합해져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생활주변의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있다는데 나에게는 조용한 카페에서 듣게 되는 소음이 바로 그런 백색소음이 아닐까 싶다.

한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백색소음을 평상시 주변소음에 비해 약 10데시벨(dB) 높게 들려주고 일주일을 지냈더니 근무 중 잡담이나 불필요한 신체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한 달 후 백색소음을 꺼버렸더니 서로들 심심해하면서 업무의 집중도가 크게 떨어졌다고도 했다. 즉 백색소음이 없는 것보다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켰다는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이처럼 소음이 보약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며칠 전 식사 시간에 들었던 소음의 경우는 사뭇 달랐다.

분주하게 접시를 들고 음식을 덜어오는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다소 시끄러운 음악. 자지러지게 웃어넘기는 몇몇 사람들의 웃음소리, 다른 소리에 묻히지 않으려고 점점 더 큰 소리로 나누는 대화. 식사를 한다기보다는 거의 전투적인 먹기 시합을 하듯 한 끼 식사를 한 것 같았다. 주말 한꺼번에 몰린 식당의 왁자한 그 소음을 피해 도망치듯 나와 보았지만 거리 또한 연거푸 울려대는 경적소리 등으로 듣기 거북한 소음의 소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편안한 소리의 공간을 찾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 옛날 우리가 돈을 주고 물을 사먹는 시대가 오리라는 생각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제는 물에도 브랜드가 생기고, 소리조차 돈을 주고 사 듣는 시대가 온 것임에 분명하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소음까지도 돈을 주고 사 듣는 시대 말이다. 숙면 유발용으로 아주 인기가 좋다는 일본 오키나와 해변의 파도소리를 녹음한 CD를 들으며 도심의 슬리핑 캡슐 등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때로는 조용한 카페의 분위기, 때로는 시끌벅적한 펍의 분위기, 때로는 국립공원의 소박한 자연 속으로 찾아들어가는 것. 이 모두가 결국엔 원하는 분위기와 소리를 돈을 주고 사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고 그건 아니라고 잔소리를 해대던 내가 요즘엔 아이들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간혹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기도 한다. 사회가 첨단화될수록 소리 또한 다양해지고, 듣기 거북한 소리를 덮어주고 치료해주는 또 다른 소리의 처방. 그 약이 되는 소리를 나 또한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것 같다. 하루하루의 일정과 끊임없이 와글거리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 갖가지 사건들에 지쳐갈 때마다 문득 숨어들고 싶어진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백색소음의 아늑한 품속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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