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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문화칼럼]한국 영화 100년의 쾌거

 

 

 

2020년 2월 10일은 한국영화100년사에 최대 경사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드디어 일을 냈다. 이미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장편영화상, 각본상, 감독상에 이어 최우수 작품상까지 수상했다.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을 주며 참석자 및 한국인, 나아가 전세계인을 놀래켰다.

아카데미상이라면 할리우드의 메이저영화사들의 경연장이라고 알려졌고 일찍이 <벤허>, <아라비아의 로렌스>, <스타워즈> 시리즈 같은 대작들이 수상하는 영화제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외국어로 제작된, 그것도 그들 제작비에 비하면 저예산의 영화가 무려 주요 4개부문상을 휩쓴 것이다.

그것은 한국영화사에도 없었던 일이고 아카데미상 초유의 일이다. 이 같은 기적을 한국영화가 해내었다. 한국인의 끼와 정서는 일찍이 TV드라마로 시작된 한류와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시작된 K-Pop이 세계시장에 알려지더니 급기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일을 낸 것이다. 이는 정해진 수순일 수도 있는 일이고 그동안 한국인들이 보여준 기적의 한 예이다. 일찍이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로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었던 사례도 있지만 영화예술분야에서 이 같은 쾌거는 처음이다.

1959년 안성기 배우가 <십대의 반항>으로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하고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었다. 196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과 더불어 아시아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선전하였다. 그리고 서구권 국제영화제에 계속 출품하였지만 수상 소식은 없었다. 이런 갈증을 풀어준 영화는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 1989년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의 영화인데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임권택 감독은 2002년 <취화선>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기에 이른다. 1989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한국영화의 국제영화제 수상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결과는 영화시장 규모도 글로벌화 되었고 그동안 한국영화가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을 이어오며 나타난 결과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노력의 결과이지만 혼자 절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봉준호는 현 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인 영화진흥공사 부설 영화아카데미 졸업생이다. 시나리오를 썼던 한진원 작가는 용인대 영화영상학과 출신이다. 이들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엘리트들의 출현은 그동안의 영화 교육의 결과이며 아울러 영화시장의 변화가 이들의 등장을 뒷받침해주었다.

한국영화 시장규모가 미국 시장에 견줄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해마다 자국영화의 천만 관객이 동원되는 흥행실적을 보여왔다. 외화의 흥행순위를 앞지른 예는 세계영화 흥행시장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그리고 한국영화가 이번 쾌거를 이루어 낸 것이다. 해외 언론도 이 같은 쾌거를 기꺼이 축하해주었다.

아카데미상은 그동안 영미영화 위주로 시상해오며 타국영화에 제한적이었다. 뉴욕타임즈는 <기생충>의 수상을 다양성 영화의 신호탄으로 보았다.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이례적인 시상은 세계영화계에 던지는 아카데미상의 글로벌화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을 한국영화가 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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