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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찌그러진 술잔

 

 

 

 

 

술로 인생을 망친 사내는 생각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났겠다’고. 그는 산중에 들어가 목을 매달았지만, 그만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엉덩이에 멍만 들었다. 이번엔 목을 매는 대신에 산꼭대기 벼랑 끝에 가서 뛰어내리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절벽을 내려다보니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게 차마 용기가 안 났다.

그래도 죽어야 한다고 눈을 질끈 감고 막 몸을 던지려는데 뒤에서 피리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영화에서나 보았던 하얀 도포 자락에 상투를 튼 허연 수염의 도인이 바위 위에 앉아서 피리를 불고 있는 게 아닌가. 말로만 듣던 이슬만 먹고 산다는 도인이었다.

피리를 불고 있던 도인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신가?”

“예, 방금 저 아래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으려던 인생 낙오잡니다.”

“그럼 뛰어내려 죽지 않고 왜 여길 왔는고?”

“도인께서 저에게 살길을 일러 주십시오.”

“도대체 그대의 가장 큰 근심 걱정이 뭣인고?”

“술입니다. 하도 인생사가 안 풀려 알코올에 젖어 삽니다. 우선 술버릇부터 고쳐야겠습니다. 하루도 술 없이는 못 사니 이걸 어떻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야 있지.”

사내는 간절하게 청했다.

“그렇습니까? 그 방법 좀 가르쳐주십시오.”

“아주 간단하네.”

“간단해요? 어떻게?”

도인이 술 끊는 방법을 사내에게 일러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 목욕재계부터 하고 깨끗한 새 옷 한 벌을 갖춰 입게나. 그런 다음 이렇게 가부좌를 한 뒤에 내가 일러주는 주문을 서른세 번 읊조리게나. 따라 해 보게. 사라사라사부야 사부야사라.”

사내가 주문을 따라 외웠다.

“사라사라사부야 사부야사라.”

“됐네, 이제 자네는 내려가서 내가 시킨 대로만 하게. 그럼 술은 말끔하게 끊게 될 거야. 한 가지, 자네가 그 주문을 서른세 번 외우는 동안 절대로 술잔 생각을 하면 안 되네. 한 번이라도 술잔 생각을 하면 말짱 도루묵이야, 알겠는가?”

“예, 도인님. 절대로 술잔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사내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도인이 시킨 대로 목욕재계를 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다음 가부좌를 틀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해서 스물세 번까지는 술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물일곱 번째부터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술잔 생각을 뿌리치며 주문에만 열중했다. 딱 서른한 번째였다. 난데없이 지난번 선술집에서 마셨던 모서리가 찌그러진 막걸릿잔이 생각났다. 겨우 두 번을 남겨놓고서 그는 도인 앞에서 맹세했던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단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하던 짓거리를 하루아침에 버릴 수가 없다. 더구나 인간은 쾌락을 추구한다. 바로 그게 중독이다.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쇼핑 중독, 일 중독 심지어는 게임 중독까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인간처럼 나약한 존재도 없다. 지금 무심코 술을 마시고 있는 그대, 조심할지어다. 자칫 당신의 지나친 술버릇을 천지신명도 고칠 수가 없을지 모른다. 절대로 과음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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