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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입에 달고 사는 말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 중에 흔히 쓰는 말이 ‘죽겠다’는 소리다. 아프면 아파서 죽겠다, 좋으면 좋아서 죽겠다. 웃기면 웃겨서 죽겠다, 심심하면 심심해서 죽겠다. 배부르면 배 터져서 죽겠다, 성질나면 화가 나서 죽겠다. 일이 뜻대로 안 되면 ‘그냥 콱 죽어버리겠다.’ 이래도 죽겠다, 저래도 죽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말 스스로 죽는 사람도 있다. 세상천지 만물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지인 중에 한 무명작가가 있었다. 그는 평생 글을 써서 발표했지만 이렇다 할 작품 하나 남기지 못했다. 남들 다 타는 문학상 하나도 받지 못한 지질히도 문(文)복이 없을뿐더러 가난하기도 이를 데 없었다. 그는 결국 죽기로 작정을 했다. 한데, 막상 죽으려니 죽을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어느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살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여. 그래서 그만 죽기로 작정을 했네.”

전화를 받은 시인이 흔쾌히 응답했다.

“그 참 좋은 생각이네. 솔직히 자네 같은 어벙이 무명작가는 죽는 게 나아. 어디서 어떻게 죽기로 했나?”

“그냥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기로 했네.”

“이 겨울에? 얼음이 얼어 제대로 죽겠나, 차라리 화장실에 들어가 면도칼로 손목을 확 그어 버려.”

그러자 어벙한 무명작가가 겁을 내어 말했다.

“그건 너무 참혹하지 않을까?”

“그럼 수면제를 한주먹 먹고 뒈져.”

어벙 작가가 말했다.

“어허, 요새 수면제는 아무리 처먹어도 죽질 않는다던데.”

“그럼 모가지를 매달아 죽든지.”

“이 사람아? 그렇게 숨 막히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죽겠다는 거야?”

“그걸 모르니 내가 자네한테 전화를 건 거 아닌가.”

시인이 딱해서 대답했다.

“인간아, 그러니 네가 이름 없는 무명작가로 평생 살아왔지.”

“그래서 내가 죽겠다는 거 아닌가.”

“근데, 제대로 죽지도 못하잖아?”

“그러게, 난 이제 어떻게 죽으면 된단 말인가?”

“그냥 접시 물에 코 처박고 콱 죽어. 앞으로 나한테 전화도 걸지 마라.”

이 말에 무명작가는 화가 나서,

“자네가 지금 날 무시하냐? 내가 너 같은 시인 놈한테 무시를 당해도 싸냐. 내가 그런 놈으로 보여?”

“그래. 내 눈엔 네가 그런 놈으로 보여, 넌 죽을 용기조차 없는 놈이여. 그런 놈이 시간 아깝게 엇다 전활 걸어, 전화 끊어!”

전화를 끊자 무명작가는 진짜 성질이 났다. 그는 소리소리 지르고 악을 쓰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던 가운데 기적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갑자기 핏줄이 터져서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무명작가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전갈이 왔다.

그것 보라지, 죽을 때가 되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 세상을 하직한다. 그런데 왜 죽음을 그토록 다그치는가?

한번 태어난 이 세상, 우리 모두 ‘죽겠다’는 소릴 제발 그만하고 열심히 살아봅시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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