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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저녁은 드셨나요?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걸고 싶은 저녁. 차에 앉아 휴대폰 연락처를 들여다본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여러 날. 만만하게 전화할만한 이름을 떠올려본다. 몇 명 되지 않는 중에서 퇴근시간이라 망설여지는 몇을 빼고 나면 한 둘 정도만 남는다.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울어도 받지 않는다. 바쁜 시간이니 당연하다.

저무는 하늘 끝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무가 보인다. 하늘로 뻗은 가지가 허공을 나눈다. 가지와 가지 사이 삼각이나 사각으로 분리된 허공. 그 사이에 걸린 저녁의 채도가 짙다. 이내 나뭇가지와 허공의 경계를 어둠이 흐려 놓는다. 경계가 모호해진다.

심리적인 경계는 보이지 않는다. 타인들이 암묵적으로 설정한 경계가 그렇다. 나만 모르는 경계를 타인들이 공유하면 ‘왕따’가 된다. 그 경계는 성벽처럼 견고하다. 빈틈 하나 없이. 어쩌면 그것은 내가 만든 경계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만든 선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 일명 ‘자발적 왕따’라고 하지. 생각해보면 내가 먼저 뒤돌아서고 금을 그어놓은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환했던 낮은 침몰하는 배처럼 조금씩 어둠에 잠긴다. 나무들도 검은 형상으로 굳어간다. 어느 누가 저 어둠을 말릴 것인가. 천천히 집요하게 스며드는 어둠. 눈치 채지 못하게 부드럽고 강력하게 밀고 들어오는 저 무서운 힘. 어둠은 힘이 세다. 역사상 어둠을 둘둘 말아 자루에 집어넣었다는 인물은 없었으니까. 골목으로 어둠이 기어 들어온다. 추위를 등에 지고 낮은 포복으로.

확진자를 카운트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숫자는 매일 갱신된다. 그럴수록 두려움의 무게도 늘어간다. 생활 경계선 밖으로 도통 나가고 싶지 않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도 참는다. 한두 번의 기침에도 덜컥 신경이 곤두서고 관련 뉴스를 보면 심장박동 수가 올라간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1월 만해도 중국 우한 지역을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이젠 남의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가 갑자기 늘면서 사람들은 활동 범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젠 너도 나도 물리적인 경계선을 긋기 바쁘다. 각자의 경계선 안에서만 생활한다. 바이러스가 퍼진 이후의 모습이다. 자발적인 격리가 모두를 위한 예방책이 되었다.

두 번째 연락처를 누른다, 신호음이 얼마 울리지 않았는데 바로 받는다. 오히려 당황스럽다.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받아서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저녁 먹었나요?’ 그냥 일없이 묻는다. 저쪽도 ‘아직’ 이라고 받는다. 마지막으로 바이러스 조심하자고 마무리를 짓는다.

저녁 먹었나요? 누군가에게 물었던 적이 많다. 그러고 보니 밥을 먹었냐고 묻는 것보다 ‘저녁은 먹었나요?’라고 묻게 된다. 밥은 생략하고 아침이나 점심처럼 시간이나 때를 먹는다고 표현한다. 뭘 먹었는가보다 그 때를 거르지 않았는가에 중점을 둔다. 밥을 굶는 사람이 없어도 그런 안부를 묻는 이유는 잘 지내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리라. 끼니를 잘 챙겨 먹고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느냐는 안부의 다른 표현.

간단한 안부인데도 그 사람과 나와의 거리가 반으로 줄어든 듯하다. 전화 통화 몇 마디가 경계를 말랑거리게 만든다. 바이러스 때문에 물리적인 경계는 어쩔 수 없더라도 심리적인 경계는 쌓지 말아야지. 특히 요즘처럼 분노를 표출할 곳을 찾는 대신 말이지.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서로를 피하게 되면서 서서히 미쳐가는 것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이럴 때 마음이라도 가까이 있다면 힘든 시기를 함께 밀고 가는 힘이 되지 않을까.

어둠이 경계도 없는 아가리를 벌리고 내 차를 서서히 집어삼킨다. 아니 내 나라를 삼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침이면 이 어둠도 걷히리라는 것을. 내가 할일은 어둠을 지켜보는 일과 내일이 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저녁은 드셨나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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