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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誠愛칼럼]노을빛 붉은 치마에 쓴 편지

 

 

 

2004년 수원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가 낡은 책 3권을 습득했다. 그때 마침 그것을 본 사람이 헐한 가격으로 구입했고 2006년 텔레비전의 감정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다산 정약용 선생의 ‘하피첩’인 것이 알려졌다. 이후 이것은 2010년 10월 보물로 지정되고 2015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낙찰받았다. 낙찰가액은 무려 7억5천만원.

하피첩의 서문을 보면 저간의 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시집올 때의 훈염(예복)으로 붉은빛은 흐려지고 노란빛은 옅어져 글씨 쓰는 바탕으로 알맞았다.”

다산은 아내가 보내온 붉은 색 바랜 낡은 치마를 70여장으로 자르고 다듬어 B5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치마폭마다 종이를 붙여 빳빳하게 첩(帖)을 만들어 하피첩이라 이름지었는데, 다산의 말대로 이는 곧 홍군(紅裙, 붉은 치마)을 달리 표현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이 하피첩에 남은 두 아들을 위해 간곡한 자신의 심정을 적었다.

하피첩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다산은 제일 먼저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첫 대목에 ‘효제위행인지본(孝弟爲行仁之本)’이 보인다. 효제(孝弟)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란 의미다. 효(孝)는 부모에 효도하는 것을 말하고 제(弟)는 형제간의 우애를 말한다. ‘孝’자와 ‘弟’자 옆에는 붉은색 동그라미까지 표시했다. 화목한 집안을 위해선 “돌을 던지면 옥구슬로 답하고, 칼을 들면 단술로 대접하라”고까지 말한다.

또한 다산은 아들들에게 무엇보다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다. 벼슬이 없으니 재산을 물려주지 못한다며 대신 두 글자의 신령한 부적을 남긴다고 했다. 근(勤)자 검(儉)자 옆에는 역시 붉은색 동그라미가 진하게 했다. ‘근면과 검소는 좋은 논밭보다 나으니 한평생을 쓰고도 남는다. 근면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아침에 할 일을 오후로 미루지 않는 것, 의복은 그저 몸을 가리면 되는 것인데, 고운 베로 만든 옷은 해지면 처량한 티가 나지만 거친 베로 만든 옷은 해져도 별 상관이 없다’ 등 다산이 구체적으로 든 예들이다.

부지런함으로써 재물을 생산하고 검소함으로써 가난을 구제한다는 직접 된 이야기도 좋지만 “재물은 잡으려 할수록 더 미끄럽게 빠져나가니 메기와 같다”처럼 비유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공감을 일으킨다. 다산은 그러면서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말을 남긴다. “재물을 자신을 위해 쓰는 사람은 형체로 쓰는 것이고, 남에게 베푸는 사람은 정신으로 쓰는 것”이라는 것. 형체로 누리는 것은 해지거나 허물어지기 쉽다. 그러나 정신으로 누리는 것은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지 않는가.

코로나19로 한국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코리아포비아(phobia)가 유행병처럼 번져 세계가 한국을 경원시 한다. 손홍민도 2주간 격리고 추신수도 발열에 기침 소속팀 전체가 긴장한다. 모리셔스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 17쌍이 모두 격리됐고, 현재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한 나라는 79개국이다. 마스크를 사겠다고 몇 백 미터를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폭리를 위해 마스크를 사재기 하고, 둔갑시키고 빼돌리기 한다. 미끄러운 재물에 눈이 멀어서다. 우리는 늘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다산이 노을 빛 치마에 쓴 편지 하피첩이 남긴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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