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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봄이 왔는데

 

 

 

우리에게 뚜렷한 계절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더운 여름에는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을 그리워하고, 겨울에는 꽃이 만발하는 봄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다. 그런 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바람조차 졸고 있는 호수에서 아지랑이가 하늘거린다. 호수 길 따라 산책하는 삽살개가 주인을 앞섰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신이 났다. 원앙새 떼도 활기차다. 수컷 원앙의 머리 위로 펼쳐진 청록색 깃털에 윤기가 자르르하다. 지난해 수명을 다해 누운 물풀 사이로 어미 잉어가 천천히 배회하는데 곁에서 어린 물고기는 무리를 지어 노닌다. 저 멀리 물닭은 자맥질이 한창이고.

봄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베란다에 앉아 진한 커피 향에 취했을 때 새눈 돋는 나뭇가지에 훈풍이 스치면 마음은 앞서서 날개를 단다. 그리하여 수취인도 없는 엽서를 산 넘고 강 건너 실체 없는 임에게 띄우는 허황한 꿈을 꾸게 한다.

봄에는 친구가 곁에 없어도 무방하다. 발길 따라 걷다 보면 마주치는 것마다 친구고 말동무다. 그중에서도 흙을 뚫고 머리를 치켜든 새싹은 반가움의 극치다. 새싹 앞에 앉으면 대지에서 울리는 봄의 소리가 쿵쾅쿵쾅 들린다. 그 소리는 희망의 울림이요, 환희의 경적이다. 돌돌돌 시냇물 따라 능수버들 줄기에 물이 오르면 진달래는 화사하게 웃음 짓고, 복사꽃 능금 꽃도 잔치 상을 벌린다. 머지않아 세상은 초록색 물감에 휩싸여 노래하리라.

지난해 이맘때, 하나로 마켓 공터에 봄을 팔던 꽃시장에는 눈이 부셨었다. 수선화와 팬지, 튤립, 만천홍을 비롯한 갖가지 꽃이 발길을 유혹하지 않았던가. 어느 가족은 네모 화분에 봄을 담고 있었지. 두 손 번쩍 들고 진열대를 누비다가 다람쥐 상자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가서 앉던 네댓 살 아이도 기억에 선하다. 옆의 새장에서 잉꼬는 사랑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었지.

코로나19 탓이로다. 봄은 왔는데 느끼지 못하고 즐길 수 없으니 아깝기 그지없다. 얼굴을 구별할 수 없는 마스크 차림이 호수 둘레 길에도 어김이 없다. 지나는 사람과 마주치면 거리를 두어야 하는 현실이 차갑기만 하다. 출근길의 만원 버스, 북적이던 전철, 발을 밟혀도 목례 한 번으로 용서되던 바글거리던 시장 풍경이 이리도 그리울 줄을. 자유로운 일상이 행복이던 시절이었음을 이제야 알다니. 코로나19는 잠시 잊었던 한국인의 정을 일깨워 주었다. 걷잡을 수 없이 확진자가 퍼지는 지역에 타지 의사와 봉사자들이 자진하여 참여하여 협력하는 따뜻함. 정성을 다하는 의료진에게 전국에서 필수품을 보내며 격려하는 우리의 인심이 되살아나지 않았던가. 과거에 일부 정치인이 집권 욕심으로 호남과 영남 간에 적대관계를 조장하여 두 지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 이번 코로나19로 대구시에 병실이 부족하여 대기 중인 확진자를 광주시에서 모셔다가 치료하여 퇴원하게 한 사례는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

지금은 학교마다 웃음꽃이 활짝 피어 활기가 넘치련만, 운동장은 적막강산이다. 새 책을 준비하고 새로운 선생님이랑 새 교실에서 첫 수업을 시작하는 3월은 학생들의 꿈이 활할 타오르는 환희의 달이었다. 새 옷을 차려입고 새 책가방을 맨 채, 가족 손에 이끌려 종종걸음으로 입학하던 아동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가. 중학교과 고등학교, 대학교에 부푼 가슴으로 입학했어야 할 학생들도 창문 열고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겠지. 운동장과 교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의 소리 듣고 싶고, 거리마다 넘치는 사람들도 보고 싶다.

전염병이 제 아무리 고약해도 첨단 과학을 이기지는 못한다.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19도 우리의 노력에 기필코 승복하고 봄이 가기 전에 떠나갈 것이다. 기쁜 뉴스 듣는 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맛 집 거리 배회하며 고소한 붕어빵을 맛본 후 시장 모퉁이의 갈치구이를 기분 좋게 시키련다. 카페에 들려 달달한 커피도 주문할 터이다. 친구를 두엇 불러내서 아이처럼 떠들며 함께해야지. 남 의식 않고 어깨를 활짝 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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