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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뜨락]권태로울 틈이 없는 하루

 

 

코로나 전염병이 창궐하는 대구 경북 지역에 머무는 죄 아닌 죄로 스스로 자가 격리에 이른지 거의 달포는 되어간다. 누우면 관속 같은 비좁은 공간에 고서 몇권과 전공서적 등 어질러진 잡동사니에, 딱 콧딱지 만한 곳에서 하루 24시간 보내는 일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런 고난의 세월을 타개해 보고자 모색하다 짧은 콩트 한 편을 지어 보았다.

세상이 권태롭다. 사는것이 무료하다. 아니 지겹다. 나날이 번복되는 일상, 아침에 일어나 똥 누고 씻고,오늘은 또 어제와 무엇이 다른 하루 일까를 생각 했을때, 똑같은 시간에 동네 목욕탕에서 아는 이를 만나, 국물있는 아침이 먹고 싶어, 시내에 나가 사 먹은 아침, 그 국밥을 저녁에도 먹고 그 다음 날 아침까지 먹으니 완전히 국밥이 질린다.

수 십년 만에 말 키우고 양 키우고 본인의 말에 의하면 탕화살이 끼어 토굴을 세번쯤 불 태워져 이제는 있는 그대로 살겠다는 좀 특이했던 예전의 스님을 만나 도무지 권태로울 틈 없는 그 이와 점심을 함께 했던 적이 있다.

통도사에서 비구계도 같이 받은 바 있고 개운사 살 때는 고려대에 유학온 이름도 가물 가물한 러시아 미녀인 그녀조차 지나치게 호감을 지녀서 나만 마주치면 여러번 묵설당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그 묵설은 헌칠한 장부 였는데, 홀로 살며 동물들 선방(그의 표현, 양과 말이 거주하는 축사)을 짓느라 작업복 차림에 조로한 얼굴이어 영 맘이 좋지 않았다. 끓여 먹는 섭생에 지쳤는지 예전의 훤칠한 호남형의 몰골이 아니었다. 나도 쉰을 훌쩍 넘겼으니 예전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이십년도 훨씬 넘어 만난 묵설당은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쿠바를 다녀왔다고 하며, 송이를 팔아 다녀온 쿠바에서의 여러 사진을 보여주며 쿠바의 추억을 일러 줄 때 나는 갑자기 가보지도 못한 쿠바가 너무도 그리웠다.

세상은 늘 소란 스럽고 소란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고, 헤겔이며 마르크스 모택동이며 장개석 등 혁명가 이든 공무원이든 교육가 이든 그들에게도 오늘의 일상은 과연 어떠 했을까? 그들도 늘 권태로움을 느낄 틈이 있었을까?

하긴 감방에서 고행 중인 이명박 이나 박근혜의 일상보다는 나의 삶은 덜 권태로운 삶이니 일단은 만족스럽다.

말도 타며 양털 자르고 송이를 따서 캐나다를 경유하여 쿠바를 다녀온 묵설의 용기와 그의 권태로울 틈 없는 삶은 내게 사뭇 충격으로 다가온다.

게으름이나 싫증 혹은 지루함이란 권태로움의 세상들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증상, 고급스러우면 고급스러울수록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은 증상, 꼭 빠져나오거나 극복하거나 해소해야 할 증상인 권태는 상당히 매력적인 증상일 수도 있지 않을 까 싶다. 어느 하루가 권태로울 수도,어떤 한 시절이 권태로울 수도, 전 생애가 내내 권태로울 수도, 누군가의 묘비명에 “그는 생애 내내 권태로웠다”라고 시작하면 어쩐지 상당히 근사할 것도 같다. 게으름이나 싫증 혹은 귀차니즘 같은 단어를 쓸 때와는 달리 말이다. 어쩐지 상당히 근사할 것 같은,이 막연한 느낌 때문에 고급스러운 증상으로서 권태의 정체성, 이제 권태란 무엇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오늘 하루 많은 생각을 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배가 고파 밥을 먹는다.머리 위에 떠오르는 별조차 싱겁기 짝이 없다.사람들은 마당에 멍석을 펴고 잔다. 그들이 그저 먹고 자는 시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은 극단적인 권태 그것이다. 불에 달려드는 불나비는 정열의 생물이다. 여기엔 그처럼 불을 찾으려는 정열도, 뛰어들 불도 없다.끝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들오들 떨릴 뿐이다.”

시골 마을의 변화 없는 자연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지루한 삶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권태감을 견디기 힘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에 대한 성찰도 쉽지 않아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낸 소설가 이상의 수필 작품을 차용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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