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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꼼수 공화국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은 몽염(蒙恬)에게 명하여 흉노에게 잃어버린 북쪽 땅을 회복한 후(BC 215년) 이미 있던 성(城)들을 연결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만리장성이다. 당시에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고, 현재의 것은 명나라 때 작품이다. 그런데 그 때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만리장성이 북방민족을 제대로 막아낸 적은 없다. 수천 킬로미터의 장성에 군대를 다 주둔시키기 어려웠고, 한 군데만 뚫리면 전체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장성축조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웠던 것은 외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이었다. 실상은 아직 망국의 한을 풀려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을 장성축조에 동원하여 힘을 빼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분 아래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과 같다. 명분에 가려 세심한 내용을 따져보지 못한 채 결국 후회하는 일들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대표적 사례는 국회의원 선거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것이다.

꼼수에 꼼수만 양산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의석수만 계산하던 정당투표를 전체의석수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하는 제도다. 따라서 지역구에서 많이 당선된 정당은 비례의석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양대 정당은 손해 보는 느낌이고, 소수당은 의석수를 늘릴 수 있다.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거대 양당의 독주를 막는다는 명분아래, 제1야당을 뺀 이른바 ‘4+1 연합’이 패스트트랙을 통해 만들어냈다. 제1야당을 빼고 선거제도를 개정한 역대 사례가 없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이 볼 때는 허점이 많은 제도였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였고, 작년 말 개정안이 통과되자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 이를 꼼수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형태로 더불어시민당을 만드는 꼼수를 따라하였다. 연합정당을 넘어 명실상부한 위성정당으로 운영 중이다. 민주당이 겉으로 부인하는 또 다른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도 창설되었다. 혹시 한 석이라도 건질까 요행을 바라는 듯 35개의 정당들이 비례대표선거에 나섰다. 그러자 양대 정당은 48.1㎝에 달하는 투표용지 윗부분을 차지하려고 의원들을 꾸어주는 꼼수를 앞 다투어 실행하였다. 비례대표의원은 자의로 탈당하면 의원직이 박탈되므로 셀프제명하는 꼼수도 동원되었다. 제명이라면 정당 내 징계의 최고단계인데, 당의 방침을 따른 의원들 제명이라니! 미래한국당은 내친김에 교섭단체 구성요건인 의원 20인을 채워 국고보조금 55억 원을 더 받았다. 국가배당금당의 경우 지역구에 여성을 30% 이상 공천하여 여성추천보조금 8억4천200여만 원을 독식하였다. 바른미래당과 민생당의 ‘비례의원 셀프제명’ 다툼은 소송까지 간 끝에, 셀프제명이 무산되어 미래통합당으로 가지 못한 임재훈 의원은 민생당 소속으로 미래통합당 심재철 후보의 선거를 돕고 있다.

총선 직후 여야 뜻 모아 선거법 개정에 나서기를

21대 총선을 앞둔 정치판은 꼼수에 꼼수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쯤 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해 단식도 불사했던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정당의 운명을 걸었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묻고 싶다, 이런 것이 정말 원하던 것이었는지? 민주당은 진정 소수를 배려할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꼼수 정치인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정치인들은 당선에, 정당은 의석수에 목숨을 거는 것이 당연하다. 허점을 드러낸 제도가 문제이고, 이런 중요한 변화를 자신의 이익만 바라보고 밀어붙이는 아마추어 정치수준을 탓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난하면서, 대통령을 견제할 국회는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낫다는 모순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이 문제라면 문제다. 선거제도의 개정은 선거가 멀리 있을 때, 즉 총선 직후가 적기다. 그래서 이번 총선이 중요하다. 총선을 통해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정당들을 걸러내고, 이전으로의 복귀든 또 다른 제도로의 개선이든 선거법개정에 나서라고 명령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권리일 뿐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모든 국민의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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