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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레이건 스펙스’와 ‘메아리’

 

 

 

 

 

n번 방에서 자행된 폭력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려버린 요즘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익명이 보장된 공간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게 돌변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러한 잔혹한 행위가 돈으로 거래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온라인상에서 자행되는 폭력은 우리 사회의 오랜 논란거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수많은 현대 예술가들은 인간이 지닌 폭력성을 지속적으로 고발해 왔다. 클래스 올덴버그는 청계천에 설치된 높은 소라껍데기 형상의 조형물의 작가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작업 초기에는 평범한 일상에 만연한 폭력성을 고발하는 작업을 했었다. 스웨덴인이었던 그는 1960년에 미국의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건달들, 주정꾼들, 매춘부들, 권총 든 사람들이 넘쳐나는 거리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극도로 자본화된 사회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이처럼 잔혹한 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리에 뒹굴고 있는 쓰레기들과 파편들을 주워왔고, 그것에 석고와 물감을 덧발라 권총 모양을 만들었다. <레이건 스펙스 Ray Gun Spex>(1960)는 이렇게 완성된 권총들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그가 만든 레이건들은 부식되거나 버려진 파편 그 자체였고 매우 조잡한 것들이었지만 한데 모아 놓으니 미국 사회가 지닌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섬뜩했다. 총부리들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하도록 놓여 있곤 한다. 그 크기와 모양이 각양각색이듯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손에 쥐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어떠한 물건이든 ‘ㄱ’자 모양으로 구부려 손에 쥐면 그것은 총 형상을 띄게 된다. 마찬가지로 폭력성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스 올덴버그는 레이건들을 가지고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무대에는 도시 생활의 위험과 곤궁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 등장하였고, 이후 머리에 붕대를 잔뜩 감은 작가가 등장했다. 작가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거리에서 직접 겪은 자동차 충돌 사고를 상세히 묘사했다. 클래스 올덴버그는 때로는 가게를 열어 자신이 만든 레이건들을 관객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가게에는 레이건뿐만 아니라 그가 거리에서 수집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돈으로는 무엇이든 거래가 되고 실제 무기까지 거래될 수 있는 세상이니, 그가 만든 레이건이라고 거래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n번 방에서도 금전거래가 되지 않았었던가.

우리나라 작가 최선 역시 <메아리>(2015)라는 작품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잔혹성을 고발했다. 그는 어린 시절 다리 밑에서 어른들이 개를 잡기 위해 산 채로 그것을 매달아 털을 태우던 장면을 목격했다. 그 순간 털이 타면서 내는 냄새와 연기를 잊을 수 없었고, 훗날 그 장면을 커다란 전시 공간 안에 재현시켜 놓았다. 전시장 안에는 다른 설치물은 없었고 다만 새하얀 사방의 벽은 회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가 개와 고양이, 사람의 털을 태워 만든 재로 직접 칠한 벽이었다. 몇 년 전 필자가 실제로 전시장을 찾았을 때 그곳에는 탄내가 여전히 자욱했었다. 재현해 놓은 것은 그날의 연기와 냄새였지만 <메아리>라는 작품명을 살펴보니 연기나 냄새보다는 매달려 있던 동물이 내는 소리가 더욱 끔찍했을 것 같다.

클래스 올덴버그가 레이건을 만들었던 것은 60년 전이고, 최선이 어린 시절 어른들이 개잡는 모습을 보았던 것도 수십 년 전 일이었다. 적어도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치안이 강화된 거리에서 잔혹한 폭력을 직접 목격할 가능성은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음침한 곳으로 파고 들어가 잔혹한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인간의 잔인성을 고발해온 수많은 예술가들의 외침 메아리 없이 묻히고 말았던 것일까.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미국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한 인터뷰에서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뇨. 안타깝게도 못합니다. 세상은 각성된 개인이 모두 실천할 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술이 세상이 나아갈 길 정도는 보여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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