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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선생님의 재택근무

 

박 교사 :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냈어요?

최 교사 : 엄청 어려웠어요. 처음엔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일주일이 가고 또 일주일이 가고, 그러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교실을 들여다보면 걱정만 쌓이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던 시간들이 그리워지고… 나는 교사가 맞구나 싶어 눈물겨웠어요.

박 교사 : 방안을 찾자고 채근하는 교장의 입장에도 동정이 가더라고요. 리더는 저렇구나.…

최 교사 : 캐나다 로키산맥 기슭의 어느 마을에서 근린공원 임시 갤러리를 마련했는데 거기에 한 초등학생이 써 붙인 ‘칩거 중에 내가 할 일’ 목록을 어느 블로그에서 봤어요. 할머니께 전화하기, 친구들과 그룹 채팅하기, 쿠키 굽기, 쿠키 먹기, 숙제하기, 그림그리기, 리스트 작성하기, 갤러리에 내 그림 걸기…. 아이의 생활과 생각이 오롯이 드러난 그 작은 페이퍼를 보고 다짐한 게 있어요. 내가 아이들에게 일일이 안내하고 설명하고 지시·통제하고 점검·확인하고… 단편적·단기적·일시적으로 그렇게 종용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박 교사 : 그 나라에선 가르칠 역량에 대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그 역량을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기를지는 전적으로 교사의 재량이고 책임이라지요? 또 학생에 따라 어느 학생은 가령 첫 번째 학기에 과학을 배우지만 다른 학생은 마지막 학기에 과학을 배울 수도 있고요.

최 교사 : 그게 개별화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교사가 정하니까 교과서도 교사마다 다르고 심지어 교과서에 나오느냐 아니냐는 의미가 없다고 해요. 어느 학자가 쓴 책에서 ‘우리 몸이 자연현상의 영향을 받는 사례’를 공부할 때 볼륨이 엄청 높은 스피커 앞을 지나면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고 비트(beat)의 크기가 심장 박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주제로 잡아서 한 학기 동안 공부하더라는 초등학생 자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서울대에서는 누가 A+을 받는가’).

박 교사 :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물리학자의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르치자”고 한 하버드대 교육심리학자 브루너의 주장을 그대로 실천하는 수업이군요. 교사는 단계별로 학생들을 안내하고 도와주는 역할만 하고, 제각각 연구주제를 정하고 실험을 설계해서 실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석해서 발표하면 한 학기가 끝난다지요?

최 교사 : 우리는 교과서에 적힌 개념과 원리 자체를 읽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 집중하고 그게 평가기준이 되니까 호기심, 창의적 사고, 과학적 방법은 오히려 시간 낭비이고 학습에 방해가 될 뿐이죠. 이제 그런 교육을 저부터 그만두고 당장 교육다운 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교육을 바꾸자고 해야 설득력이 있겠지요? 교육과정 기준도 그런 논리로 바꿔달라고 제안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박 교사 : 좋은 생각이에요! 이번 사태는 공교롭게도 개학에 맞물리긴 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학생들에게 일일이 국어책 펴라 수학책 펴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허구한 날 하나하나 떠먹여주는 교육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해묵은 그 견해들이 극명하게 다가왔어요.

최 교사 : 그렇죠! 정해진 시간, 정해진 좌석, 정해진 교과, 정해진 수업목표, 정해진 교과서 내용… 이 숨 막히는 전체적, 획일적, 수동적 수업방식을 바꾸지 않고는 안 되겠다 싶어요.

박 교사 : 그런 교육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교재 교구를 아무리 선진화해서 최첨단을 자랑한다 해도 우리는 그 기기들을 이용해서 여전히 주입식 수업을 설계하게 되니까 재택수업 같은 절실한 구상을 해봐도 이래서 문제다, 저래서 불가능하다, 미래지향적 적용은커녕 전통적 상황이 그대로 전개되기가 일쑤겠지요.

최 교사 : 우리는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졌으니까 기대해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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