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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의 향기]유세가들의 말 잔치-‘전국책(戰國策)’

 

 

 

 

 

전국책은(戰國策)은 전국(戰國)시대(BC.403~BC.221) 즉, 진(晉)나라가 삼국(三國)으로 나눠진 시점부터 진(秦)에 의해 전국(全國)이 통일될 때까지 약 180년간의 기록이다. 일반 역사서와는 달리 왕이나 세가들의 역사가 아니라 종횡가(縱橫家)들의 언설(言說)과 책략들을 국가별로 기록한 책이다.

이 시기는 각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던 때였으므로 위나라와 같은 소국(小國)은 물론 진(秦), 초(礎)와 같은 대국(大國)에서도 부국강병책으로 천하의 패자(覇者)를 꿈꾸거나 생존의 수단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것을 우선하던 때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종횡가들이 나타나 천하를 누비며 각국의 군주에게 자신의 외교술과 책략을 받아들여야 부국강병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변설과 권모술수가 난무하였다.

이 책은 전한(前漢) 시대에 유향(劉向)이 각 나라별로 33편의 술책들을 모아 정리하였는데 후대에 많은 주석가들이 차례로 주석을 달아 오늘날 전해져 오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팔고자 마(馬)시장에 내놓았으나 며칠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다. 누구도 그 말이 준마(駿馬)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백락(伯樂)을 찾아가 이렇게 부탁하였다. “제가 준마를 팔려고 며칠을 저자에 내놓았으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선생께서 저자에 오셔서 제 말을 한번만 둘러봐 주시고 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뒤돌아보아 주십시오. 그러면 사례하겠습니다.” 백락은 마시장에 나가 일단 그 말의 앞을 지나갔다가 돌아와 말을 살펴보고, 다시 떠나면서 아쉬운 듯 뒤돌아보았다. 당연히 그 말의 가격은 예상가의 수십 배로 팔렸다.

이 이야기는 『전국책(戰國策)』의 연책편(燕策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연(燕)나라에서 중용되었던 유명한 종횡가 소진(蘇秦)이 죽자 그의 동생 소대(蘇代)가 연나라에 등용되고자 연 제왕(燕齊王)을 만나기 위하여 제왕을 시중하던 순우곤에게 한 유세이다.

백락(伯樂)은 본디 마(馬) 감정으로 유명한 진(秦)나라 사람을 칭하는 고유명사였으나 후세에 마소(馬牛)의 매매나 감정(鑑定)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말 주인은 백락에게 “제 말을 감정해 주시고 준마라고 해주십시오.”라고 하지 않았다. 아마 백락과 같은 권위자에게 정식으로 감정을 의뢰하였다면 막대한 사례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며 백락 또한 자신의 권위에 관련된 것이므로 함부로 좋은 품질로 감정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백락이 시장에서 한번 둘러보는 정도라면 자신이 손해 볼일도 없고 그 말에 대한 선전효과는 충분했을 것이다. 결국, 순우곤의 주선으로 소대(蘇代)가 제왕(齊王)을 만나게 되었으니 소대의 유세(遊說)는 성공하였다. 말(馬)이 팔리지 않는 것은 말 주인이 이름 없는 미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백락의 권위를 이용하여 값을 올린 것이다.

다른 사람의 권위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꾀하는 처세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할 선량(選良)들은 자신의 상품성보다는 대통령과의 친소를 내세우거나 정당 내에서의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과장해야 당선된다고 믿는다. 이는 권력자나 당(黨)의 뒷배를 과시하며 보잘 것 없는 품질을 소비자에게 준마로 포장하는 것인데, 백락을 동원하여 값을 올리는 시장바닥의 논리에 불과하다.

이제 열흘 남짓 남은 이번 선거는 기상천외한 선거법으로 인하여 수많은 정당이 난립하였으나 정작 정책과 인물의 품질은 찾아볼 수 없고, 꼼수와 반칙만 무성하다. 국민들은 생계와 세균과의 전선(戰線)에서 하루가 고단한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정책과 상품을 가리고 백락을 동원하여 국민들을 눈 없는 얼간이로 만들려 하고 나라 안을 온통 저자거리로 만들려 하고 있다. 나라의 안위(安危)는 준마(駿馬)를 알아보는 국민의 눈에 달려 있음을 이번 선거에는 더욱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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