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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돌발 상황

 

 

 

달린다. 자동차는 달리고 그 안의 연인은 서로 손을 꼭 잡고 함박웃음을 띠고,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 마침내 미친 듯이 내달리는 속도. 양 옆으로 갈라지며 찢어져가는 도로. 문득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에 시선이 빼앗겼나 했는데 순간, “끼~익!”

곤두박질치고 마는 자동차.

느닷없이 나타난 돌발적인 의외의 사건들을 통해 영화에서 노리는 건 역시 짜릿한 감동 또는 충격 또는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싶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리얼리티의 맛을 살리는 돌발 상황이 현실에서는 하늘이 무너질 듯 난감하기 짝이 없을 때가 있다.

몇 년 전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늦은 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수화물을 확인하던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갖가지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채운 캐리어가 고스란히 사라진 것이다. 우왕좌왕하던 나는 다행히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가 우리나라 국내항공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차근차근 문의를 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의 수화물이 그곳 공항의 사정으로 처음부터 실리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물건을 고스란히 받을 수는 있었지만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이란 말할 수 없는 곤혹함으로 다가왔었다.

요즘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내 일상에 들이닥친 엄청난 돌발 상황임에 분명하다. 학생들은 학교를 갈 수가 없고 어린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을 편안하게 등원할 수가 없다. 자영업자들은 영업점을 갖고도 문을 열수가 없으며 문을 연다 해도 찾아오는 이가 없을뿐더러, 이웃을 만나 허물없이 한 끼 식사를 편안하게 나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엄청난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다는 일상의 현실 앞에 처음엔 ‘며칠 참으면 되겠거니’ 했지만 그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으니 나 또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에 쫓기며 일에 지쳐 쉬고 싶다는 생각을 밥 먹듯이 했던 지난 시간이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여유조차 없다며, 머리카락이 유난히 빠지기 시작했다며, 친구의 짜증 섞인 핀잔 한 마디에 연연하며, 얼굴주름이 늘었다며. 온갖 핑계들로 인한 불만투성이 그 시간들이 요즘 같은 돌발상황 앞에 갑자기 숙연해지곤 한다. 사실 그런 일상들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었다는 걸 나는 늘 문제의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야 깨닫는 것 같다.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는 하루하루의 일과, 그것이야말로 가장 평화롭고도 안정된 행복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몇 년 전, 길을 놓치고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가 고속도로에서 더 큰 교통사고를 내고야말았던 기억이 있다. 조금만 더 차분하게 상황파악을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를, 순간의 돌발 상황에 무너진 내 부족한 융통성 또는 순발력의 문제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이 떠들썩한 돌발 상황 앞에 각자가 절박한 긴축의 시간으로 돌입한 지금, 나는 서서히 내 부족한 융통성이나마 살려내고 싶다. 걱정, 걱정, 걱정만으로 움츠리지만 말고 실천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조용히 전체의 흐름에 맞게 움직이되 차분하게 내 일상을 준비하는 것. 막연히 겁먹고 숨어 있지만 말고 안전한 가운데의 건강한 일상. 마스크 끼고, 손 소독하며, 사회적 거리를 의식한 안전하고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준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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