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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나무를 심다

 

 

 

 

 

꽃비가 쏟아진다. 한 몫에 쏟아진 꽃잎이 거리를 질주한다. 바람의 향방을 따라 거리곳곳을 누비는 벚꽃 잎들, 꽃비 구르는 거리를 타박타박 걷는 나는 이 계절의 이방인 같다. 사람이 꽃을 맞이하지 못하니 이젠 꽃이 사람의 거리로 내려와 함께 하고 있다.

봄꽃들이 피었다 지는 동안 우리는 문을 걸어 잠그기에 바빴다. 꽃을 갈아엎기도 하고 꽃들의 입구에 빗장을 치면서 출입을 막았다.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꽃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저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봄을 보내고 있다.

마음은 답답하지만 들녘에 나서보면 활기차다. 못자리를 만들고 논을 갈아엎고 밭에 비닐을 깔아 밭작물을 심는 등 농경이 시작된 들녘은 생기가 돈다. 배꽃이 활짝 핀 과수원은 꽃의 초례청을 차려주느라 왁자하고 주말농장 또한 서툰 손길들이 모여 정성을 심느라 하루해가 짧다.

우리도 사과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산에 심었는데 관리가 어렵다보니 칡넝쿨이며 풀에 뒤덮여 식재한지 5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 밭으로 옮겨왔다. 가지는 약한데 뿌리는 제법 실하다. 척박한 환경에서 버텨내느라 뿌리에 힘을 썼나 보다. 구덩이를 깊게 파고 물을 듬뿍 준 후 식재했다. 올해는 어렵겠지만 내년에는 사과가 꽤 열릴 것 같다.

발갛게 매달린 사과를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잘 익은 놈 하나 뚝 따서 옷자락에 쓱쓱 문질러 한 입 베어 무는 생각을 하니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농사가 서툴러 제대로 짓지는 못하지만 이것저것 심어놓고 들여다보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다.

대추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체리나무 호두나무 등 몇 그루씩 심었다. 대추나무는 싹이 늦게 튼다. 매실이 열매를 키우기 시작하면 그제서 슬그머니 잎을 꺼내기 시작하고 감나무는 해거리를 한다. 해거리는 영양이 부족하니 영양제를 달라는 신호라고 한다. 한 해 감이 많이 열리면 다음해는 영락없이 쏟아낸다.

포도나무는 제대로 봉지를 씌우기만 하면 송이가 굵고 맛이 좋다. 다만 꽃이 피었을 때 욕심내지 말고 적당히 솎아주어야 포도송이가 실하다. 많이 먹겠다고 욕심을 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적당히 가지치기를 해주고 나무의 특성을 잘 알아야 제대로 키울 수 있다.

어느 해인가 대추나무에 열매가 어찌나 많이 열렸는지 열매가 맺힌 대추나무 가지를 솎아냈다. 대추를 크게 키우기 위해서였는데 나무에 손을 대고 나서 열매를 다 쏟아냈다. 열매가 맺힐 때 가지를 잘라내면 열매를 다 쏟아낸다는 것을 몰랐다. 열매를 쏟아내고 잘린 자리에 잔잎만 수북하게 피워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거나 식물을 키우는 일이거나 지나친 욕심을 내거나 원칙을 벗어나면 안 된다. 순리를 따라야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사람도 성격과 취향이 다르듯 나무 또한 성질이 제각각이다. 꽃을 피우는 시기도 다르고 열매를 맺는 방법도 다르다. 매화 꽃 진자리 열매가 맺히고 체리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다.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꽃이 지천이고 이 꽃들 지고나면 새순을 꺼낼 것이고 우리의 웅크린 마음에도 밝은 미래가 올 것이다. 농부가 땅을 일구며 희망을 경작하듯 서로에게 꽃이 되고 서로에게 푸릇한 새순이 되어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지혜를, 오늘을 극복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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