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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향기]4월의 샌드위치

 

 

 

 

 

햇살이 눈부신 한 낮. 벚꽃이 화사하다. 이렇게 화려한 날에 외출할 일이 없다. 좀 아쉽다. 대신 삶은 달걀을 다져 넣은 샌드위치를 만든다. 달걀을 삶는 동안 오이와 양파를 다지며 입술을 움직여 본다.

 


샌. 드. 위. 치. 입술 사이로 나오는 낯익은 발음. 카페에서도, 빵집에서도 흔히 보는 간단한 식사. 아니, 간단하다는 말은 하지 말기로 하자. 결론만 보고 과정을 간과하는 사고다.

 

 

 

먹는 방법이야 한 입 베어 무는 것으로 간단할지 몰라도 만드는 과정은 절대 간단하지 않은 음식이 샌드위치니까. 간단하게 비빔밥 해먹자는 말도 마찬가지다.

 


가운데에 낀 상태를 샌드위치에 비유한다. 두 쪽의 빵 사이에 있는 재료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부대끼는 상황이다. 부모와 자녀사이. 상사와 부하 직원사이, 선배와 후배사이의 중간자 역할이 힘들다.

 

 

 

부모에 대한 부양과 자녀의 뒷바라지로 정작 자신의 노후는 생각할 겨를이 없는 중년. 권위적인 상사와 공사 구분이 명확한 부하직원 사이에서 욕을 먹는 과장. 선배와 후배 틈에서 괴로운 가운데가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을 든다면 책임은 무겁고 권리는 가볍다는 것이다. 명예 없이 책임만 짊어지는 경우도 있다. 일이 잘못되면 질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힘든 것은 일보다 사람들의 말이다. 말로 인해 관계가 틀어지고 그로 인해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가운데가 있기에 사회가 돌아가고 샌드위치도 맛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운데의 재료가 맛을 좌우한다는 사실. 달걀을 넣으면 달걀 샌드위치, 햄을 넣으면 햄 샌드위치. 빵 사이에 들어가는 내용물에 따라 샌드위치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핫도그는 소시지가 중요하고 붕어빵은 단팥이 맛을 좌우한다. 소시지 없이 핫도그가 존재할 수 없으며 단팥 없는 붕어빵은 존재가 무의미하다. 내용물의 질이 중요하고 가운데의 능력이 중요한 이유다. 어떤 사람이 중심을 잡고 일처리를 하느냐가 일의 성패를 가른다. 위와 아래를 잘 연결하고 왼쪽과 오른쪽을 뭉치게 하여 잘 굴러가게 만드는 일은 바로 가운데가 하는 일이다.

 


축구를 보더라도 미드필더가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없다. 척추가 중심을 잡아야 몸이 든든하게 버티고 과장급이 역할을 잘 해줘야 조직이나 회사가 돌아간다. 어디 그뿐인가. 중산층이 두터워야 사회가 건강하고 중간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청렴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선거에 있어서 후보도 중요하지만 어떤 참모가 있느냐에 따라 당선과 낙선이 갈리기도 한다. 내용이 확실해야 맛이 보장되는 샌드위치처럼 말이다.

 


모양과 맛도 적당해야 한다. 나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이쪽과 저쪽의 빵 사이를 잘 채워야 한다. 재료가 부실해서 빈약하고 맛없는 것도, 재료를 욕심껏 넣어서 먹기 곤란한 것도 좋지 않다. 적당한 위치에서 적절한 맛으로 들어간다면, 빵에 가려 재료의 존재감이 없을지라도 맛있는 샌드위치가 된다면 그것으로 끝.

 


가운데 역할을 했었다. 내겐 중요했던 모임의 총무를 이태 전 4월에 내려놓았다. 회장과 회원들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던 자리.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며 열심히 했고 성취감도 느꼈다. 반면, 적잖이 신경 쓰이고 부담스러웠던 자리. 임기 말까지 잘 해왔고 잘 끝냈다. 깔끔하게. 내가 만든 4월의 샌드위치처럼.

 


꽃잎이 바람에 지는 날. 크리스 디버그의 노래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를 들으며 봄날의 샌드위치를 즐긴다. 유난히 힘든 올 4월. 그런 나를 위로해 주는 노래가 ‘4월의 눈을 가진 소녀’다. 소녀의 눈에 들어 있던 4월을 보지 못한 어리석고 사악한 왕은 그녀를 쫒아낸다.

 


안을 들여다 볼 줄 모르는 눈은 보이는 대로 사고하고 감각에 편승한다.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것은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밖에서만 애를 쓰고 찾는지도 모른다. 내 눈은, 또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4월을 놓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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