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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도깨비

 

 

 

 

 

오늘날 도깨비는 아이들 동화 속에서나 등장한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도깨비는 살아 있었다. 도깨비는 주로 후미진 마을 어귀나 상엿집, 공동묘지 같은 데 살고 있었다.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면 여지없이 도깨비가 나타나 길가는 길손의 혼을 뺏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도깨비는 읍내 오일장이 서는 밤이었다. 술에 취한 동네 어르신이갈치 몇 마리를 새끼줄에 꿰차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오면 다리가 하나뿐인 도깨비가 나와서 시비를 붙었다. “나하고 씨름 한판 붙자.” 도깨비의 빈정거림에 술에 취한 어르신은 도깨비와 밤새 씨름을 한다. 죽을힘을 다해 도깨비와 힘겨루기를 하던 어르신은 날이 희뿌연 해서야 도깨비한테서 풀려났다.

날이 새면 밤새 씨름판을 벌인 동네 어르신이 돌아와 도깨비와 겨룬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가시밭을 얼마나 누비고 다녔는지 얼굴에는 상처 자국이 선연하고, 장에 간다고 차려입은 무명바지저고리는 온통 흙투성이로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도깨비에 얽힌 얘기는 우리 민족의 혼처럼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절구 방망이 도깨비, 달걀 도깨비, 낮도깨비, 밤도깨비, 망태 도깨비 등 주로 오래된 물건이나 지팡이가 도깨비로 변했다.

그 도깨비가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이젠 옛날처럼 술에 취해 밤길을 걷는 어르신들도 없어졌다. 설령 비 오는 날, 밤도깨비가 나오더라도 설 자리가 없다. 구석구석 가로등에다 길마다 화등잔 같은 불을 밝힌 자동차들이 밤길을 오간다. 이 눈부신 밤길 속에 감히 도깨비는 나설 생각을 못 한다.

그런데도 세상은 도깨비 판이다. 소위 인간 도깨비들이 갖은 해코지를 다 하고 있다. 백성들의 등짝을 후려치는 인간 도깨비들이 수도 없이 나타난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연일 그런 도깨비들의 이야기로 도배를 하고 있다.

이놈들은 하필이면 없는 자들 앞에 다가가 피 같은 재물을 뺏어간다. 옛날 도깨비는 씨름을 붙어서 사람 진을 빼놓았는데, 요새 도깨비는 느닷없이 사람의 뒷덜미를 내려친다. 그리고 이놈의 도깨비는 술 취한 취객만 노리는 것이 아니다. 대낮에 멀쩡한 시골 노인들을 호려서 가짜 약을 팔고 쌈짓돈을 빼간다.

남들은 죽자 살자 일하는 판에 그냥 제 자리에 앉아서도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상한 도깨비들도 있다. 취업설명회를 가장하여 돈을 빼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가끔은 무슨 횡재라도 안겨줄 듯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부동산을 소개하고 우체국 소포를 찾아가라는 정신 나간 도깨비들도 있다. 별의별 도깨비가 판을 치는 요지경 세상이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도깨비에게 홀리게 생겼다. 참 무섭다. 인간 도깨비들이 설치는 이 세상에선 간혹 부부간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도깨비가 된다. 아비와 자식 간에도 간을 빼먹는 도깨비 판이 벌어진다. 도깨비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옛날 도깨비들은 비 오는 밤 장터 주막집이나 인적 드문 으슥한 후미진 곳에서 나타났지만, 요새 도깨비들은 다른 탈을 쓰고 시도 때도 없이 산지사방에 나돈다.

감히 고한다. 도깨비 세상에 도깨비한테 홀리지 않도록 우리 모두 바짝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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