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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오늘제소리]궁핍한 날의 벗

 

 

 

초정 박제가는 200명이 넘는 외국인과 교류했다. 조선 500년 역사상 중국의 학자와 관료들에게 가장 대접을 받았던 조선인이지만 서자로 태어난 까닭에 젊은 날을 차별과 가난에 시달렸다. 박제가는 우정에 관한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이 가운데 서울 생활을 접고 강원도 기린(인제)으로 떠나는 벗 백동수에게 준 글은 우정에 관한 한 조선 최고의 명문이다.

“천하에서 가장 친밀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을 말하고,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습니다. …벗이란 술잔을 건네며 도타운 정을 나누는 사람이나,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가까이하여 앉는 자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나 저도 모르게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벗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벗에서 우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안대회 번역)

평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먼저 도움을 베풀던 백동수를 추억하며 우정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백동수는 서자인 박제가와는 달리 할아버지가 서자여서 서얼의 굴레를 쓰게 된 경우다. 이들의 주변에는 뛰어난 재주와 실력을 갖추었으나 가난에 허덕이던 벗들이 많았다.

박지원과 이덕무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백탑파’는 18세기 조선 지성사를 훤히 비춘 보름달 같은 존재이다. 대다수가 가난한 백수들인 백탑파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서상수와 백동수, 홍대용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박제가는 가난한 시절 이러한 벗들과 맺은 아름다운 우정을 ‘백탑에서 맺은 맑은 인연[白塔淸緣集序]’이란 글로 갈무리했다.

정조의 사부였던 담헌 홍대용이 고을 수령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후배 이덕무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자신의 고을로 내려와 함께 살자고 권했다. 그러나 이덕무는 선배의 호의에 깊이 감사하면서도 그 초청을 거절한다. 한겨울, 문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을 병풍처럼 책을 펼쳐 막고 이불처럼 책을 덮어 잠을 청해야할 정도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는 결국 아끼던 책 <맹자>를 팔아 쌀을 샀다. 이 사실을 들은 벗 유득공도 자신의 애장서 <좌씨전>를 팔아 쌀을 사고 술을 사서 이덕무와 나누어 마셨다.

이덕무는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일을 소개하며 “맹자가 몸소 밥을 지어 나를 먹여주고 좌씨가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 것과 무에 다르겠소”라며 능청을 떨었다. 한사코 벼슬을 거부하며 야인으로 살았던 연암 박지원도 가난에 쪼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백탑파의 맏형 박지원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황해도 금천 제비바위골(연암)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꿀벌을 쳤다.

한편 백동수는 가난한 벗과 이웃을 돕다가 빈털터리가 되자 제도가 바뀔 때까지 과거를 보지 않기로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했다. 이때 영조가 서얼도 청요직인 선전관에 선발하도록 지시를 내렸으나 백동수는 선전관에 최종 탈락하고 말았다. 벼슬에 미련을 버린 백동수는 농사를 짓기 위해 가족을 이끌고 강원도로 들어간다.

1778년 영조의 뜻을 계승한 정조가 파격적인 법안을 마련했다. 6품 이상 진급할 수 없었던 서얼을 3품 당상관까지 오를 수 있도록 정한 것이다. 정조는 규장각을 세우고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를 검서관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기회를 틈타 임금에게 자신들이 사랑하는 벗을 소개했다. 조선 최고의 무인이 지금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정조는 백동수를 불러 선전관에 임명하고 장용영 창설의 주역으로 삼았다. 정조의 명을 받아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가 1790년에 펴낸 <무예도보통지>는 지난 201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앞으로 <무예도보통지>를 세계에 알릴 때 이들 세 사람의 각별한 우정도 함께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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