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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해 그름

 

 

 

가는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늙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나도 세월을 느낀다. 팽팽하던 피부도 웃을 때 보면 잔주름이 가득하다. 그런 내가 한심해서 가끔 친구들한테 물어볼 때가 있다.

“얘 내가 부쩍 늙어 보이지.”

그럼 친구들은 말한다.

“아냐 넌 나이보다 젊어 보여.”

그럼 나는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한다. 위로의 말이겠지. 절로 늙어가는 내 모습을 솔직히 인정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늙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천날 만날 마주 보고 사는 내 남편도 옛날 같지가 않다. 늘 피곤하다고 한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픈지 주말이면 가던 등산도 그 햇수가 줄어들었다. 그런 남편도 먹고살기 위해서 출근길에 나선다. 젖은 낙엽처럼 어깨가 축 늘어져 현관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안쓰럽다.

그날 밤 따라 남편은 후줄근히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당신 솔직하게 말해봐. 지금 내 모습이 어때? 나 진지하게 묻는 거야.”

“뭘요?” 하고 내가 다그치자 남편이 말했다.

“솔직히 내가 조금 늙어 보이지?”

나는 남편의 물음이 하도 황당해서 그냥 웃어 넘기려했다.

“아냐, 아냐. 진지하게 묻는다고 했잖아. 날 봐. 똑바로. 그리고 당신 솔직한 느낌을 말해봐.”

솔직히 남편은 최근 들어 부쩍 늙어 보였다. 그 팽팽하던 피부도 기력이 떨어졌고, 돋보기를 끼고 목을 길게 늘인 채 신문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솔직한 느낌이요? 그래요. 내 눈에 당신은…, 늘 당신 모습 그대로예요.”

“그렇게 얼렁뚱땅 넘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

남편의 말이 더욱 진지해졌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

“궁금하단 말이야. 남들의 눈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여보? 내 눈엔 언제 보아도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궁색한 나의 변명에 남편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나도 잠시 거실에 앉았다가 침실로 들어갔다. 잠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옷장을 열고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그때 얼핏 벽에 기댄 화장대의 거울 속으로 나의 벗은 몸이 비치는 게 보였다. 나는 그만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그래, 내 남편은 늙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저 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떠할까? 나는 뚫어지게 거울 속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때 등 뒤 침실 문이 열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흠칫, 정신을 차리고는 남편을 뒤돌아보았다.

“여보? 당신 눈에 내 모습은 어때요?”

남편은 고개를 외로 돌렸다. 나는 답답해서 남편을 다그치며 다시 물었다.

“그렇죠? 내 몸이 옛날보다 훨씬 뚱뚱해졌죠? 거기다가…?”

남편은 말없이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양팔로 나를 감쌌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나에게 속삭였다.

“내 눈엔 아직 멀었어. 당신 늙으려면…. 그러니까 안심해.”

순간 눈시울이 붉어져서 남편의 몸을 밀어내었다.

“저리 가요.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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