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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21세기 신 통제사회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이 된 인간)』에는 산업혁명이 노동자 계급을 창조했지만 당면한 과학혁명은 쓸모없는 계급을 창조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AI와 빅데이터는 생명을 무한정 연장하고 모든 생산을 기계가 대신하는, 신에 가까운 인간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초인류는 극소수이며, 대다수는 자유의지가 허용되지 않는 잉여인간으로서 초인류에 의해 부양되는 계급이다. 초인류가 보통 인간을 어떻게 취급할지는 현재 인간이 동물을 보는 시각과 같을 것이다. 이런 미래상은 코로나 사태로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존 사회시스템의 저항 때문에 지체되던 4차 산업혁명은 가속화될 것이다. 비대면?비접촉 사회가 당연시되면서, 자동화를 빌미로 대량 인원감축이 별다른 저항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학교들, 심지어 대학에서도 대면강의에 회의감이 들고, 전통적 권위대신 콘텐츠만 중요시된다. 굴뚝산업과 전통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새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권력의 사회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투명사회를 강조하는 코로나사태는 통제사회로 이어질 수도

사생활 침해로 볼 수 있는 확진환자 이동경로가 큰 저항 없이 공개된다. 이를 당연시한 우리가 방역 모범국가로 평가되면서, 사태 초기에 이를 비판하고 동선을 공개하지 않던 유럽국가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우한봉쇄를 비판하던 미국도 결국 도시봉쇄에 준하는 통제를 받아들였다.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발동하여 민간기업에 의료장비 생산을 명령하기도 했다. 진단키트와 치료제뿐 아니라 백신까지도 개발절차를 단축하여 신속사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보건당국뿐 아니라 첩보기관에도 개인의 위치데이터 접근권을 주었다. 중국은 드론을 동원해 시민들을 감시하고 안면인식기술을 이용해 격리지침을 어기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방역을 빌미로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는 일도 벌어졌다. 몰타와 이탈리아는 지중해에서 방역을 핑계로 난민지원을 거부하고 조난된 선박을 방치했다. 구호단체에 의해 구조된 200명에 대하여 하선장소를 제공하지 않았고 결국 배는 전복되었다고 한다. 이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유럽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을 이주 통제정책을 위한 기회로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물론 각국의 대응방식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하지만 세계는 봉쇄조치로 인한 고립과 공동대응을 위한 국제공조체제 강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가별로는 중앙통제적 감시체제 강화와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효과적 대응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권력에 대한 감시만이 통제사회를 막아

세계적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은 지난 27일 르푸앵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방역대책을 칭찬하면서도 ‘매우 감시받는 사회’라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투명한 정보공개’는 외신에서도 화두였지만, 이는 ‘통제가 쉬운 사회’를 말하고, 사생활 침해와 연결된다. 하라리의 말대로 “정부가 모든 사람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불투명한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총 감시체제”일 수 있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통한 감시뿐 아니라 성폭력범에 채우던 전자발찌가 안심밴드라는 이름으로 어물쩍 도입되었다. 논란이 컸던 원격의료도 이참에 도입될 기세다. 정부의 주식매입을 통한 기업지원은 사기업에 대한 통제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여야는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합의하면서 재정적자문제는 심각한 논의를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합의가 안 되면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하라는 의견도 나왔다. 헌법상 요건인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말이다. ‘자발적 반납과 기부’를 전제로 예산을 짜고, ‘강제반납’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토지소유자들의 ‘자발적 동의’를 강요하여 건설한 ‘새마을도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곳이 많다. 4월 총선에 자가격리자를 포함한 2천9백만 여명이 투표했지만 코로나 확산은 없었다. 정부의 통제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자발적 방역, 자기통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비상으로 잠시 양보했던 기본권통제가 영구화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깨어 감시하지 않으면 소수 권력자들이 주도하는 신 통제사회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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