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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향기]놀이터

 

 

 

 

 

페이스북(face book)에 모란이 피었다. 속치마 같은 하얀 꽃잎이 수술을 가운데 두고 겹겹이 포개졌다. 타임라인을 훑던 눈이 사진에 꽂힌다. 한군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P씨와 K씨도 J씨의 페이스북에도 하얀 모란이 있다.

배경과 모델은 동일하나 찍힌 각도가 다르다. 셋이 함께 본 모양이었다. 모두 자신의 휴대폰에 모란을 담았다가 시간차를 두고 각자 페이스북에 고이 풀어놓았겠지.

P씨는 서교동의 하얀 모란이라는 제목으로 꽃의 얼굴을 클로즈업을 했다. 사진 찍는 솜씨가 빼어난 그이의 모란은 화려하다. 그이는 내가 가지지 못한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시를 쓰는 솜씨도, 음식을 만드는 솜씨도, 살아가는 솜씨도 감칠맛이 난다.

K씨는 활짝 핀 것과 시들고 있는 모란을 함께 찍었다. 어쩌자고 길에서 면사포를 쓰고 있냐고 모란에게 묻는다. 역시 시인의 감수성은 남다른 것인지. 그늘이 깊은 그이의 시를 읽을 때 나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J씨의 모란은 수줍은 듯 꽃잎이 살짝 벌어졌다. 더불어 붉은 모란 사진도 함께 올렸다. 보기 드문 백모란이 피었다며 홍모란도 함께 올리고 친절하게 김영랑의 시도 올렸다. 전직 기자답게 페이스북에 정치나 이슈에 대한 생각을 장문으로 브리핑하는 그는 사람 좋다는 평을 듣는다. 상대를 편하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그들이 풀어놓은 모란. 동일 모델, 같은 배경이지만 해석은 사진사마다 제각각. 취향에 따라 관점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심지어 지칭하는 말도 백모란, 흰 모란, 하얀 모란처럼 다 다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묘미가 이런 점이 아닐까. SNS는 공감을 주로 이끌어 내는 곳이다. 어떤 화제에 대해 공감하고 응원하고 축하해주는 것이 주기능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곳도 이곳이다. 동일 현상을 다르게 해석한다. 개인적 성향이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는지 보여준다. 마치 나이도 다르고 몸집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처럼 말이다.

온라인 놀이터에도 골목대장처럼 인기 많은 사람이 있다. 목소리가 커서 따르는 팔로어도 많아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친한 사람들끼리 토닥거리며 노는 부류도 있다. 동아리모임의 성격으로 친구 수는 좀 폐쇄적이다. 정보나 소소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친분을 유지한다. 나 홀로 독립군도 있다. 친구수가 적으며 가끔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머무는 시간이 적다.

그런데 노는 것을 보면 다 제각각이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무조건 동감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한 장을 올려도 반응은 다 다르듯 직접 몸을 부대끼고 놀 때보다 더 소상하게 성격이 드러난다. 그래서 자칫하면 상대를 물거나 또는 물리는 수도 있다. 이럴 때 SNS는 정글이다. 특히 정치적인 이빨을 드러낼 때 더욱 그렇다.

SNS는 그 사람의 성향이나 실력이 드러난다. 출신이나 졸업장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유명한 대학 교수라고 하더라도 그가 올린 글은 여러 사람이 읽기 때문에 그의 성향과 실력이 분석된다. 이 점이 신문이나 방송과 다르다. 일반 독자는 논설 필자의 주장을 볼 수는 있으나 거기에 대한 의견이나 피드백은 할 수 없다. 반면, SNS는 그 주장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도 보게 된다. 일방적 주장은 통할 수가 없다. 민주적이고 직접적인 소통방식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매력적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루덴스로 정의하였다. 놀이의 인간, 유희의 인간인 우리는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익히며 성장한다. 놀이를 통해 정신적인 창조활동과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이제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도 놀이를 창조하며 문화를 만든다. SNS는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놀이터지만 기존의 놀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놀이를 하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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