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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돼지머리에 대한 단상

 

 

 

전통시장에 들렀다. 생선전을 지나 떡집 그리고 순댓국집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초입부터 반기는 것은 돼지머리다. 고무 다라이에 몇 개의 목 잘린 돼지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표정이 제각각이다. 어떤 놈은 잘생겼고 어떤 놈은 코가 들려있고 어떤 놈은 목이 짧았으며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놈도 있다.

고사용 돼지를 삶을 땐 웃는 돼지를 만들기 위해 입에 나무토막을 물리고 삶은 후 귀가 쫑긋하게 설 수 있도록 찬물로 헹군다. 물론 삶는 시간을 제대로 잘 맞춰야 모양이 보기 좋게 된다고 했다.

고사에 돼지머리를 쓰는 이유를 살펴보니 여러 설이 등장한다. 무속신화에 배경을 두고 있지만 옥황상제 밑에 복장군와 업장군이 있었고 서로 아옹다옹하는 사이로 옥황상제는 그들이 시기다툼 하는 것이 싫어서 두 사람에게 탑을 쌓게 하니 업장군이 잔꾀를 부려 복장군을 이겼으나 그것이 탄로 나서 옥황상제는 복장군을 돼지로 환생시켜 사람들이 옥황상제께 소원을 빌 때 중개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이때부터 돼지가 쓰였다는 설이 있다.

원래 돼지는 멧돼지처럼 야생에서 살던 것을 길들여 가축으로 기르게 된 것이며 한국에 개량종이 들어온 것도 100여년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전문 축산농가에서 사육 하지만 우리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몇 마리씩 키워 집안의 애경사가 있거나 명절에 돼지를 잡아 손님을 대접하곤 했다.

돼지는 예로부터 신성시하는 동물이다.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고 횡재를 기대했다. 돼지는 다산의 상징이며 행운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개업식 등 고사에 돼지머리를 놓고 축원하는 관습이 생긴 듯하다.

비록 목은 잘렸지만 돼지가 상전이다. 내가 다니는 산악회도 정월 대보름이 지난 후 첫 산행 때 시산제를 지낸다. 산악회 전 회원이 1년 동안 무사하게 산을 다닐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고 보살펴 달라는 의미로 산신께 올리는 인사이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돼지머리와 떡을 놓고 세 번 절한다. 산악인의 선서를 비롯해 경건하고 엄숙하게 행사를 진행한다.

물론 종교에 따라 의식을 달리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산을 오름에 있어 안전하길 기원하는 마음은 똑같다. 의식이 끝나면 음식을 나눠먹으며 친목을 도모하며 산악인으로서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돼지머리 대신 돼지머리 모양을 한 케이크로 대신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잘 생긴 돼지를 만들고 코를 큼직하게 하여 코에다 돈을 둘둘 말아 끼우고는 막걸리를 붓고 기도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지만 어찌됐든 사업이 잘 되길 염원하는 마음은 돼지머리든, 돼지머리 케이크든 같다.

12지의 동물이 다 길하고 동물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특히 돼지는 복이 많은 길한 동물로 여겨 하늘에 바치는 신성한 재물이자 재산과 복의 근원으로 여겼으며 자손 귀한 집에서 자식을 얻으면 돼지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을 보아도 돼지가 우리 삶에서 사랑받는 동물임은 물론 기원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래시장 한 켠에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는 돼지를 보며 지금의 혼란스런 시국이 진정될 수만 있다면 잘 생긴 돼지머리에 막걸리 한 잔 따르고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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