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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미황사 금강스님과 하루

 

 

 

 

 

한해의 삼분의 일이 지나가는 동안 생(生)과 사(死)를 넘나들었다. 3월은 아버님께서 소천 하셨고, 4월은 49재를 통해 긴 이별을 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고향인 해남 미황사에 작은형님 내외와 여동생들, 그리고 지정 시인과 가까운 친구들이 동행했다. 미황사에서 하룻밤 보내는 밤하늘은 별빛들이 낮게 내려앉아 별을 이불삼아 잠에 들었다. 엘리엇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가르침이라도 되는 것일까’ “한밤중, 거리엔 소리조차 없고/달은 기억을 잃은 걸까?… 추억, 달빛을 받으며 홀로/난 옛날을 생각하며 웃네.” 밤은 가고 새벽을 맞으면서 찾은 미황사의 정경은 고즈넉한 산새소리와 함께 세상 떼를 버리지 못한 번뇌와 망상들로 뇌를 흔들었다.

아버지의 소년기는 열심히 배우고, 청년기에는 열정적인 에너지를, 노년기에는 여유롭게 나누고 살고자 하셨다. 이러한 삶이 이상적이지만 어디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췌장암으로 이렇게 생을 재촉해 빨리 가실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준비되지 않는 이별을 했다. 영전사진을 마주하자 불효만 했던 상념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사랑하는 막내 여동생의 불심으로 미황사의 길을 그렇게 나선 것이다.

금강스님과 더불어 다섯 스님들이 정성을 다해 제례의식을 살펴주었다. 천도재는 금강스님께서 직접 법문으로 설파해 주셨고, 생전에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을 모처럼 마주한 편안하고 안락한 시간이었다. 아버님은 설익은 내게 꿈을 안겨주고 분수와 아픔을 가르쳐준 삶이셨다. 삼남삼매인 집안에서 가장 불효를 많이 했던 탓에 떠나보내는 마음도 어느 때도 보다 숙연한 마음으로 모셨다.

공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금강스님을 뵙었다. 스님께서는 ‘차라도 한잔 합시다’ 스님의 서실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의 불교사상을 들을 수 있었다. 17세에 출가해 미황사의 하루를 들었다. 스님의 참선은 사람의 향기였다. 세 시간이 지났을까, 성찰과 사색의 고요함으로 마음 한쪽이 내려앉았다. 금강스님의 산문집『물 흐르고 꽃은 피네』,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책을 받았다. 막내 동생에게는 ‘그대 마음 밭은 이미 꽃밭입니다’. 해남 가족들에게는 체로합풍(體露合風), 자성화시인에게는 염화미소(拈華微笑) ‘아침에 일어나면 꽃을 생각하세요’.

필자에게는 진공묘유(眞空妙有)‘참된 공의 자리에 묘한 것이 있다. 수허작음(隨虛作音), ’고요한 마음에 지혜 나온다‘. 참사랑향기와 세상과 호흡하는 산중사찰의 전형을 일구시는 금강스님과 따스한 발견의 시간을 뒤로하고, 달마산과 느림의 섬 청산도를 걸었다. 땅 끝에서 부는 바람과 청산도의 풍경은 아버님과 이별의 그리움들을 떨치는 여정이었다.

다시 바퀴를 돌려 신록의 푸르름이 아름다운 오월이 지나고 있다. 피천득 선생은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했다. 신록을 바라다보면/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나는 오월 속에 있다./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 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김영랑 시인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금강스님은 부처도 가고, 우리의 생도 흙으로 돌아가며 바람 속으로 이별한다고 하셨다. 그 이별의 선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사람은 무엇이고, 어떻게 진화했는지, 삶이 추구할 가치와 의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지혜를 묻게 했다. 우리네 삶은 모두 번민과 망상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황사의 신록이 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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